책을 되새김질하다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대빈창 2017. 4. 3. 07:00

 

 

책이름 :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지은이 : 박기영

펴낸곳 : 모악

  

"옻오르는 놈은 들어오지 마시오."

그 아래 난닝구 차림의 주인은 / 연신 줄담배 피우며 / 억센 이북 사투리로 간나 같은 / 남쪽 것들 들먹였다.

"사내새끼들이 지대로 된 비빔밥을 먹어야지."

옻순 올라와 봄 들여다 놓은 사월 / 지대로 된 사내새끼 되기 위해 / 들기름과 된장으로 버무려놓은 비빔밥을 먹는다. / 항문이 근지러워 온밤 뒤척일 / 대구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을 먹는다.

옻오르는 놈은 사람 취급도 않던 노인은 / 어느새 영정 속에 앉아 / 뜨거운 옻닭 국물 훌쩍이며, 이마 땀방울 닦아내는 / 아들 지켜보며 웃고

 

표제시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의 2·3·4·5·6연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평남 맹산의 명포수였다. 맹산은 천 미터 고봉이 줄지어 늘어선 낭림산맥 험준한 산줄기에 들어앉은 심심산골이다. 시인은 1959년 충남 광천 태생이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대구로 이주했다. 아버지가 1975년 대구 앞산 앞에 열었던 식당이 〈맹산식당〉이었다. 국내 처음 문을 연 옻 전문 음식점으로 대표음식이 옻순비빔밥이었다. 한번 입에 대고 싶은 비빔밥이다. 나는 옻을 타지 않는 강한 유전자를 타고났다. 옻오르는 놈들이 가장 먼저 긁어대는 곳이 항문이다. 예방책으로 계란 노른자위에 알약을 얹혀 삼켜도 독성이 강한 옻은 여지없이 살갗을 붉게 물들였다. 한 번 옻을 탄 사람은 겁이 나 절대 옻 음식을 입에 댈 수 없다. 옻 음식을 먹은 남편이 무심코 밤일을 하면 옻을 타는 아낙은 여지없이 옮는다고 한다. 그만큼 옻은 독성이 강했다. 내가 처음 옻 음식으로 옻닭을 입에 댄 것이 20여년 전이었다. 강화도 고비고개의 옻전문음식점 〈고성〉이었다. 참옻만 쓴다는 그 집 옻닭은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한번 옻닭에 맛을 들린 이는 뻑뻑한 백숙을 다시 쳐다보지 않았다.

 

오소리술 / 옻순비빔밥 / 어육계장 / 육포탕 / 곰순대 / 호박잎찝 / 꿩냉면 / 갓김치 / 정구지김치 / 청국장반대기 / 명태밥 / 뀡두부 / 어죽국수 / 고등어국 / 감자수제비 / 은어구이 / 감자탕 / 상어돔배기 / 콩잎장아찌 / 토끼반대기 / 마주조림 / 콩비지밥 / 아욱국 / 도리뱅뱅 / 도루메기 / 청어과메기 / 고들빼기김치

 

시편에 등장하는 음식 이름이다. 시집에 실린 50편은 모두 미발표 신작으로 음식에 관한 시었다. 시인 이하석은 발문 「미칠 듯한 근질거림의 발화」에서 - 현대판 피난민세대 ‘음식다미방’- 이라 적확하게 이름 붙였다. 시인은 1982년 등단했고, 첫 시집 『숨은 사내』(민음사, 1991)를 냈다. 두 번째 시집은 25년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인하면 장정일 시인이 곧장 따라 붙었다. 고교를 중퇴하고 문학을 독학한 시인은 중학 중퇴생인 장정일을 문학의 길로 이끌었다. 시운동 동인으로 2인 시집 『성(聖)·아침』을 1985년에 냈다. 제7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인 장정일의 첫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민음사, 1987)의 헌사다.

 

‘나의 스승이신 박기영 형께 이 유고시집 -세상의 모든 시집은 유고시집이지요-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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