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어린 당나귀 곁에서

대빈창 2017. 4. 17. 07:00

 

 

책이름 : 어린 당나귀 곁에서

지은이 : 김사인

펴낸곳 : 창비

 

첫 시집 『밤에 쓰는 편지』(문학동네, 1999)가 나오고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은 19년 만인 2006년에 독자를 찾았다. 다시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세상에 얼굴을 내민 세 번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의 얼굴이 해맑다. 시인의 작고 약한 것에 기울이는 호젓하고 애틋한 서정성은 그대로였다. 독자들은 시인의 가만히 속삭이는 어조에 귀를 열고 가만히 기울일 수밖에 없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70편이 실렸고, 발문은 대학선배 최원식(문학평론가)의 「절망을 수락하되 절망에 투항하지 않는 - 김사인 새 시집에 부쳐」로 글부조를 했다.

시집에서 세 가지 부류의 시들이 눈에 뜨였다.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다 일찍 세상을 뜬 김태정 시인, 백수광부(白首狂夫) 신현정 시인, 노동자 시인 박영근, 혁명전사 김남주 시인, 퉁방울 눈 춤꾼 윤중호 시인, 민중미술가 여운 화백 등 故 이문구 소설가의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떠오르는 인물시.

빈농의 아들로 도시 공사판을 전전하다 목을 맨 그. 남대문 시장 사장 노릇하다 IMF로 약을 삼킨 구장댁 셋째아들. 승용차를 피해 골목에 바짝 붙는 폐지 줍는 노파. 껌을 멋지게 씹으며 면발을 뽑던 중국집 全씨, 마당을 쓸고 하루같이 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는 선운 풍천장어집 김씨, 대전시 가양동 부여솜틀집 오직동씨, 흰 호각을 불어대던 회인 차부 고진각씨 등 길거리 보통 사람들의 애닮은 삶을 그린 민중시.

「일기장 악몽」은 고문, 「내곡동 블루스」는 국정원, 「오월유사五月遺事」는 광주항쟁, 「한국사」는 장삼이사의 고달픈 삶을 노래한 3부의 정치시를 읽으며 시인이 80년대 불의 시대를 정면 돌파한 사실을 문득 떠올렸다. 시인은 1989년 3월 창간된 『노동해방문학』의 발행인이었다. 당연히 시인은 수배, 도피, 투옥의 세월을 살았다. 시인은 창비가 수여하는 만해문학상을 고사했다. 수상의 영예와 상금 2000만원을 차(?)버렸다. 변명은 이랬다. “비록 비상임이라 하나 계간 창비 편집위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고, 예심에 해당하는 시 분야 추천과정에 관여한 사실만으로도 수상후보에 배제됨이 마땅하다.”고. 진짜 시인이었다. 마지막은 「비둘기호」(120 ~ 121쪽)의 1·2·3연이다.

 

여섯살이어야 하는 나는 불안해 식은땀이 흘렀지. / 도꾸리는 덥고 목은 따갑고 / 이가 움직이는지 어깻죽지가 가려웠다.

검표원들이 오고 아버지는 우겼네. / 그들이 화를 내자 아버지는 사정했네. / 땟국 섞인 땀을 흘리며 /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 나는 오줌이 찔끔 나왔네. / 커다란 여섯살짜리를 사람들은 웃었네.

대전역 출찰구 옆에 벌세워졌네. / 해는 저물어가고 / 기찻길 쪽에서 매운바람은 오고 / 억울한 일을 당한 얼굴로 / 아버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소연하는 눈을 보냈네. / 섧고 비참해 현기증이 다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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