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텃밭백과

대빈창 2009. 5. 21. 10:59

 

책이름 : 텃밭백과

지은이 : 박원만

펴낸곳 : 들녘

 

"할머니, 이 콩은 언제 심어야 하나요?" 윤구병 교수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본주의적 약육강식 경쟁원리만 심어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염증을 느껴 이 사회의 귀족(?)적 직업인 교수를 내팽개치고 변산에 공동체를 꾸린 첫해 봄, 마을 할머니에게 여쭈어 본 말이다. 하긴 학문적 성과물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먹물로 꽉 찬 철학과 대학교수가 언제 작물을 심어 보았을 것인가. 이때 돌아온 할머니 대답에 윤구병 교수는 화들짝 놀란다. "응, 그 콩은 마을입구 감나무 순이 터지면 씨를 뿌려야 돼." 아주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내 기억이 정확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나의 뇌리에 이 말이 깊게 각인된 이유는 다름아닌 할머니의 농사에 대한 경험의 소중함이다. 그렇다. 이것이 정답이다. 영농교본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각종 작물의 파종 및 이식 시기는 틀에 박힌 달력 숫자 뿐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이 땅이 온대성 기후가 아닌 아열대성 기후로 변한 요즘 그 숫자는 거짓 정보에 불과하다. 오히려 감나무의 생체 리듬이 정확한 자연의 시계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도 양배추, 케일, 브로콜리, 콜리플라워 등 재배 일력에서 장마가 닥치면 무름병이 발생하여 작물이 약해진다고, 텃밭 독자들에게 상세히 일러준다. 하지만 이 땅의 기후가 변하면서 장마는 오히려 건기가 되었고, 태풍이 몰고오는 우기에 장대비가 연일 내리 퍼붓는다.

이 책의 저자는 아마추어 농사꾼이다. 엉뚱하게 한국원자력연구소 책임연구원인 저자는 뜻밖에 생긴 텃밭으로 인해 초보 농사꾼에게 제호 그대로 '텃밭백과'라는 소중한 성과물을 증정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 10년 동안의 경험을 고스란히 살려냈다. 즉 저자 말대로 '철저한 공돌이 정신을 바탕으로 실험실을 자연으로 옮긴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텃밭에 대한 농사법 노하우를 아낌없이 초보 텃밭 농사꾼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하긴 서점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영농 책자는 실질적인 도움이 못된다. 앞서 말했듯이 틀에 박힌 재배 일력에 불과할 뿐이다. 오히려 농학 전공자가 아닌 아마추어 텃밭 농사꾼이기에 가능한, 겸손한 유기농 텃밭백과가 탄생한 것이다. 케케묵은 숫자의 나열에 쓴웃음을 진 주말농장 농사꾼이나 귀농을 꿈꾸는 예비 농군에게 정말 손에서 한시도 떼어놓을 수 없는 소중한 책자다. 나는 책을 펼치며 집앞 텃밭 여기저기에 여러작물을 파종하고 이식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하지만 당분간은 어머니에게 양보해야겠다. 집뒤 2층 계단식 경사면에 자두와 복숭아 묘목을 심었는데, 내년 봄에 텃밭 가장자리로 옮겨야겠다. 어머니는 집뒤 공간을 약초밭으로 일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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