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
지은이 : 조현설
펴낸곳 : 한겨레출판
웅진닷컴에서 출간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 시리즈 1, 2, 3은 낙양의 지가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의 독서 풍속도는 신화 열풍에 빠져 들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듯 하다. 뒤이어 중문학자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신화 1, 2'가 출간되었고, 2006년에는 드디어 우리 민족의 신들이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라는 한마당에 초청되었다. 그리고 올해 '반지의 제왕'이라는 판타지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북유럽 신화가 1, 2권으로 인문학자 안인희에 의해 새로 얼굴을 내밀었다. 가히 세계 신들의 경연장이자 백가쟁명의 도래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오래된 우리 신화 속 비밀의 문을 여는 30개의 열쇠'라는 부제가 말해주 듯 30개의 꼭지를 열어 보이며 저자는 독자에게 친절하고도 자상한 우리 신들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속에는 우리에게 낯익은 단군, 웅녀, 혁거세, 용녀 저민의(왕건의 할머니), 제주도 삼성혈의 건국신화 주인공들과 미륵과 석가의 내기싸움, 홍수설화의 주인공 오누이, 성주신인 황우양, 단군의 아들 부루, 신라의 호공과 탄생설화로 주몽, 석탈해, 김수로, 김알지 등 시조신화도 맛깔스런 글로 독자에게 새로 선보인다. 또한 초기 신화의 주인공들인 여신으로 마고할미, 노고할미, 선문대할망, 선도성모 등이 등장하여 국가권력이 형성되면서 남성중심사회가 도래하자, 숭배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억울함을 하소연한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나의 눈길을 오래도록 잡아 끈 우리 신들은 제주도 무속신화의 신들이었다. 토착-수렵세력과 농경-외래세력의 문화적 갈등을 상징하는 '송당본풀이'와 '소천국과 백주또', 제주도의 창조신화로 이승과 저승을 관장하는 '천지왕본풀이'의 주인공 형제 대별왕과 소별왕, 모계 중심사회의 흔적이 남아있는 '문전본풀이'의 주인공으로 문전신이 된 막내아들 '녹디성인', 4만년을 산 '사만이본풀이', 업구렁이에 대한 민간의 태도가 반영된 뱀과 결혼한 '구렁덩덩신선비' 그리고 우리 민족의 신화중의 신화 '바리데기'가 있다. 본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종다양, 각양각색의 신들이 제주도에는 500여 편이 넘게 조사된 신화속에, 1만 8천명이나 되는 우리 신들이 살아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텍스트가 부럽지 않다. 자고로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이에 발맞추어 신화의 섬 제주도에서는 우리 시대의 보물단지들인 신화와 전설을 문화콘텐츠삼아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대규모 사업을 준비 중이란다. 아무쪼록 졸속행정으로 말미암아 찾는 이 없이 먼지만 뒤집어썼던 지난날의 테마파크 조성사업을 벗어나, 민중의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를 한데 모을 수 있는 혜안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민족 모두의 마음에 우리 신들이 다시 강림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리엔탈리즘에 경도된 나의 신화 인식에, 우리 신화에서 수수께끼처럼 튀어나와 뒤통수를 한껏 후려쳐, 얼마간의 정신을 차리게 해준 고마운 두 분의 신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에게 태양신은 있는가? 당연히 있기에 물은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태양신은 '궁산이'였다. 그동안 나의 인식에 태양신하면 그리스의 아폴론이나 중국의 회화가 떠올랐던 것이 사실이었다. 얼마나 고마운 한 핏줄로 연결된 우리의 태양신이신가. 태양신이 당연히 남신이었다면, 여신 중에 우리 신을 대표하는 미스코리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흔들 것이다. 하릴없이 서양 여신에서 그리스의 아프로디테나 로마에서 이름만 바뀐 비너스를 떠올리거나, 한 발자국 더 나갔다 하더라도 중국신인 서왕모나 무산신녀일 것이다. 답은 자청비다.(애주가들은 아니 웬 술 이름이지? 하며 입맛을 다실지도 모르겠다) 아프로디테가 섹시미로 온갖 올림피아 신들과 난잡한 자유연애를 즐긴 여신이라면, 우리의 자청비는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세경신에 등극한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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