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대빈창 2017. 7. 20. 07:00

 

 

책이름 :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지은이 : 여림

펴낸곳 : 최측의농간

 

수산회사 이십오년 근속상을 받으셨던 / 아버지의 영전에는 삼십만원 퇴직금이 / 이땅의 서슬푸른 노동法으로 놓여지고 / 무엇일까 / 철둑길 건너 깊은 어둠 속으로 침륜하는 눈물의 평등과 / 밑둥 잘린 볏단으로 한꺼번에 쓰러지는 / 우리들의 자유는, / 공복의 희미한 어둠으로 지워져 / 이마에 못질 해대던 세상이 참담하게 / 밝아오는 새벽, 기름때 자욱히 낀 손톱밑 / 굳은 살로 박히우던 아버지의 절망들이

 

「예하리에서」(106 ~ 107쪽)의 일부분이다. 경남 거제 장승포에서 4남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1985년 서울예전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죽은 1986년 갑자기 사라져 중퇴했다. 1999년 「실업」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2002년 간경화 쇼크로 요절했다. 1주기를 맞아 유고시집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2003, 작가)가 출간되었다. ‘재출간 전문 출판사’를 표방한 《최측의농간》에 의해 2016년 5월 시·산문이 모두 실린 전집이 나왔다.

본명이 '여영진'인 시인 '여림'의 짧은 이력이다. 필명은 서울예전 스승이었던 시인 최하림의 ‘림’에서 따왔다. 36세(1967 ~ 2002년)의 짧은 삶을 살다 떠난 시인은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을 안았을 뿐, 한 편의 시도 발표하지 않았다. “저는 더 이상의 상처를 만들지도 물려주지도 남기지도 않으려 자폐를 택했답니다. 이 모든 괴로움은 이제 바야흐로 제 안〔心〕으로만 깊어질 것입니다.”(212쪽) 셋째 형에게 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이다.

시편의 마석, 모란공원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남양주에서 살았다. 작은 아파트에 혼자 살며 술을 마셨고 시를 쓰다 죽었다. 등단 후 3년 만에 일찍 세상을 뜬 시인의 전집은, 시는 신춘문예 등단작 「실업」 등 유고시집 『안개 속으로 새들이 걸어간다』에 실린 52편과 새로 싣는 44편, 모두 96편이 실렸다. 산문은 당선소감, 시작메모, 수필 등 7편과 셋째 형께 보내는 편지 2통이었다. 스승인 시인 최하림과 동기인 시인 박형준, 이승희의 발문 3편이 전집의 마무리를 맡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서글프고 애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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