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문장강화

대빈창 2017. 7. 13. 06:22

 

 

책이름 : 문장강화

지은이 : 이태준

펴낸곳 : 창비

 

시인 이문재는 시작법(詩作法)으로 롤 모델을 선택하여 정성 들여 필사하라고 권했다. 롤 모델은 한국 현대시 백 년에 두 차례 폭발했던 1940년대와 1980년대에서 찾으라고 했다. 그러면 시에 대한 자신만의 눈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강경애 / 김기림 / 김기진 / 김유정 / 나도향 / 박영희 / 박태원 / 염상섭 / 안회남 / 이기영 / 이상 / 정지용 / 채만식 / 최명익 / 최서해 / 한설야 / 현진건 / 홍명희

 

부록의 인명해설에 실린 기라성 같은 1940년대 활동했던 문인들이다. 산문에서 강조하는 『문장강화』이니만치 시인으로 이상과 정지용이 뜨일 뿐이다. 문장을 예로 드니 시인의 시가 아닌 수필이 인용되었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소설작법(小說作法)의 롤 모델은 1940년대에서 찾으라고. 위에 열거한 인물들은 대부분은 소설가다. ‘시에는 지용, 문장에는 태준’이라는 말이 있다. 상허 이태준은 한국 단편소설의 완성자다. 문학에 관심있는 이라면 「해방이후」, 「농군」, 「달밤」 등 저자의 대표작을 손에 들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여성학·평화학 학자 정희진은 독후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74년 전 책이 요즘 글쓰기 책보다 깊이 있고 세련되었다. 이태준이 동시대 인물처럼 느껴진다. 행복하다”고.

좋은 글을 쓰는 지름길은 없다. 그저 ‘많이 읽고(多讀), 많이 쓰고(多作), 무엇을 어떻게 쓸지 많이 생각하라(多商量)’(22쪽)는 것이 정도다. 영국의 문학가 페이터(Walter Pater)는 “스타일(문체)은 그 사람이다”라고 말했고, 『인간희곡』의 스땅달은 “스타일을 짓는 것은 작품을 고상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작가의 면모를 빠르게 드러내는 것은 내용 보다는 문체다. 글쟁이들이 가슴깊이 새겨들어야 할 아름다운 이야기 한 토막이 전해져온다. 가장 효과적인 표현을 찾으려 문장을 고치는 것을 퇴고(推敲)라 한다.

 

조숙지변수(鳥宿池邊樹)    새들은 연못가 나무 위에 잠들고

승고월하문(僧鼓月下門)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네

 

당(唐)나라의 시인 가도(賈島)는 시의 바깥짝에서 ‘밀 퇴(堆)’와 ‘두드릴 고(鼓)’에서 어느 하나를 정하지 못했다. 노새를 타고 거리에 나가서도 열중한 나머지 경윤(京尹) 행차와 부딪히고 말았다. 경윤은 당대의 문장가였던 한퇴지(韓退之)였다. 그가 말했다.

 

“그건 퇴(堆)보다 고(鼓)가 나으리다.”

 

분명 사람과 책도 인연이 맞는 좋은 시절이 있다. 임형택 해제의 창비에서 나온 1988년 초판을 갖고 있었다. 200자 원고지 표지그림의 문고판은 마땅히 문청이 손에 쥐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작용했다.  그 시절 소설 습작으로 끙끙 앓던 사촌동생의 손에 넘어갔다. 좋아하는 작가 최용탁의 소설집 『사라진 노래』를 애써 찾았다. 배송료가 아까웠다. 그때 리커버 에디션(기존 책의 표지 디자인을 새롭게 해 재출간 된 책)으로 나온 책이 눈에 뜨였다. 야구에서 타자가 컨디션이 좋은 날은 야구공이 수박만하게 보인다고 한다. 활자 한자 한자가 눈에 들어오는 흡족한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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