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대빈창 2017. 7. 5. 07:00

 

 

책이름 :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

지은이 : 박노자·에를링 키텔센

펴낸곳 : 책과함께

 

나의 블로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작가는 박노자다. 러시아인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2001년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박노자의 책으로 아홉 번 째다.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붓다를 죽인 부처』를 접하고 박노자가 불교도인 것을 알았다. 박노자가 “지금 여기가 지옥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은 그중에서도 무간지옥無間地獄에 해당한다.”(140쪽)고 말했듯이 이 땅은 헬조선이었다. 그것은 계급사회의 구조가 민중들에게 생로병사의 아픔 이상으로 많은 아픔을 추가시켰기 때문이다. 의지가 나약한 나는 젊은 시절 한때 출가를 꿈꾸었다. 선지식의 짧은 시구를 읊조리며 자기를 미망에 빠뜨렸다. 나는 책을 접하고 횡재를 한 기분이 들었다.

책은 박노자와 노르웨이의 시인 에를링 키텔센의 공저다. 제3세계의 시를 자국어로 번역해 온 에를링 키텔센의 꿈은 ‘금강산에서 시 낭송회’를 여는 것이다. 『모든 것을 사랑하며 간다』는 2006년 오슬로에서 노르웨이어로 펴낸 『Diamantfjellene(금강산)』의 번역본이다. 한국·중국·일본의 선지식 57분이 남긴 60편의 오도송과 임종게가 실렸다. 일본 남북조 시대의 무문 원선(無文元選) 스님이 두 편, 고려 말 백운 경한(白雲景閑) 선사가 세 편이 실렸다. 오도송(梧道頌)은 처음 깨달음을 얻었을 때 읊조렸고, 임종게(臨終偈)는 입적할 때 평생 수행에서 얻은 깨달음을 전하는 마지막 말이다. 미국 듀크대 종교학과 김환수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 현실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타자를 배제하는 척박한 우리의 삶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지혜의 경책警策‘(8쪽) 이라고.

 

生平欺誑男女群   한평생 무수한 남녀들을 속였으니

彌天罪業過須彌   그 죄업 하늘에 차고 수미산보다 높네.

活陷阿鼻恨萬端   산 채 지옥 떨어져 한이 만 갈래니

一輪吐紅掛碧山   한 덩이 붉은 해, 푸른 산에 걸려 있네.

 

한국 선불교 자체로 일컬어졌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는 선어로 유명한 큰 스님 퇴옹 성철(退翁性撤)의 임종게(臨終偈)다. 하지만  ‘자본주의 후기 시대의 사회주의자’ 박노자는 이렇게 비판했다. “군사독재나 민주화 문제 등 당대의 정치·사회적 현안들에 대해서는 끝내 함구”(73쪽)했다고. 큰 선승은 오히려 중생들의 자그마한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법이라고.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촌냉면집 아저씨는 어디 갔을까?  (0) 2017.07.10
정희진처럼 읽기  (0) 2017.07.07
장 나와라 뚝딱  (0) 2017.06.29
백제시편  (0) 2017.06.23
빈자의 미학  (0) 2017.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