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정희진처럼 읽기

대빈창 2017. 7. 7. 05:33

 

 

책이름 : 정희진처럼 읽기

지은이 : 정희진

펴낸곳 : 교양인

 

『페미니즘의 도전』의 여성학·평화학 학자 정희진의 책 두 번째를 잡았다. 2014년 나온 책은 둿 날개에 저자가 앞으로 펴낼 책들이 수두룩했다. 편집증적 강박증이 유다른 나는 작가의 책을 앞으로 몇 권 더 잡을 것이다. 「고통」, 「주변과 중심」, 「권력」, 「안다는 것」, 「삶과 죽음」의 다섯 개 장에 나뉘어 79편의 독후감(讀後感)과 세 편의 글(프롤로그, 좁은 편력, 에필로그)까지 82편이 실렸다. 영화 〈밀양〉의 원작인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에서, 우치다 타츠루의 『하류지향』까지 마초 이데올로기가 지붕 뚫고 하이킥하는 한국사회에서 ‘통념’과 ‘상식’에 대한 줄기찬 질문을 던지는 논쟁적 글은 독자가 한눈을 팔 수 없게 만들었다.

정희진의 독서법은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그런 책은 여러 번 베껴 쓴다. 번역서는 원서를 구해 필사한다. 최소 네 번 정도는 읽게 되고 읽을 때마다 다른 주제가 나타난다. 완전히 내 것으로, 내 몸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이다. 책을 볼 때 줄 치는 것은 좋지 않게 생각한다. 더럽혀지니까. 책의 중요 구절은 외운다. 인식이 있으면 저절로 외워진다.” 이런 저자의 독서법은 책을 읽고 난 후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책을 쓴 작가보다 읽은 저자에게 책은 더 ‘내 것’이 되었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모태차별 사회이고, 그것을 ‘실력’의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학벌은 가장 저열한 방식으로 작동되는 신분 사회이고 인종 사회다.(38쪽)

저출산은 양육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책보다 현실 인식이 빠른 여성들의 지혜(결혼 기피와 만혼)의 결과다.(······) 고용과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대다수 인류는 착취당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빼앗기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가 되었다.(109쪽)

여성의 사회 진출이 남성의 가사 노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여성의 취업은 평등이 아니라 이중노동이다.(142쪽)

한국 사회에서 안보는 단지 자신의 공포, 악심, 더러움을 타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만능무기로 쓰일 뿐이다.(182쪽)

한미동맹은 미국 중심의 분업 구조다. 한국은 인력을, 미국은 무기와 전략을 제공한다.(183 ~ 184쪽)

(한국은) 앎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데다(국가보안법), 사회는 자체 검열을 초과 달성하여 스스로 무지를 추구하는 분야가 많다.(282쪽)

 

저자가 잘 팔리는 책에 돈을 보태고 싶지 않은 ‘쪼잔한 정의감’과 별다른 자극이 없어 ‘베스트셀러’를 읽지도 사지도 않는다는 말에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저자가 반복해 책을 읽으며 완전히 소화하는 반면 나의 독서법은 겉핥기식이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나도 베스트셀러는 손에 잡지 않았다. 남의 이목을 의식해 읽지도 않을 책을 폼으로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군상들이 못나 보였다. 30여 년 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 십중팔구는 지금은 망한 대우그룹 총수  김우중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끼고 다녔다. 공단 도시 노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동자 세계관으로 비판한 박노해의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이 분노』는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4대 일간지는 베스트셀러 순위를 실었고, 대중들은 너도나도 책을 샀다. 김우중은 별 내용 없는 얇은 에세이를 대우그룹 산하 노동자들에게 공짜로 사서 선물했다. 당연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요즘 일부 출판사가 책사재기로 베스트셀러를 둔갑시키는 꼼수를 부리다 들통났다. 친민자본주의의 지식산업은 체면을 벗어던지고 이윤 앞에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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