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빈자의 미학

대빈창 2017. 6. 21. 07:00

 

 

책이름 : 빈자의 미학

지은이 : 승효상

펴낸곳 : 느린걸음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컬처그라퍼, 2012)

『건축, 사유의 기호』(돌베개, 2004)

『빈자의 미학』(느린 걸음, 2016 개정판)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돌베개, 2016)

 

책장에서 어깨를 겯은 건축가 승효상의 책들로 초판 출간년도와 내 손에 펼쳐진 그리고 펼쳐질 순서다. 작년에 나온 책 한 권이 나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흡족했다. 건축가는 문필가로 이름이 높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은 이렇게 말했다. “정확히 말해서 그는 글재주가 아니라 건축을 보는 안목이 높은 것이다. 그의 건축 이야기는 언제나 인문정신의 핵심에 도달해 있고 승효상은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듣는다”라고.

책은 유홍준의 집 수졸당(1992 ~ 1993)과 충남 당진의 돌마루 공소(1994 ~ 1995), 웰콤 사옥(1995) 등 승효상의 초기 건축 11점과 스케치, 설계도를 만날 수 있다. 승효상의 안목이 걸러 낸 르 또로네 수도원(1176) / 르 꼬르뷔제(1887 ~ 1965)의 라 뚜레뜨 수도원(1959)의 2층 예배실 / 주세테 테라니(1904 ~ 1943)가 설계한 카사 델 파시오(1936) / 아돌프 로스(1870 ~ 1933)의 로스 하우스(1910) /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1867 ~ 1908)의 세제현관(1898) / 루이스 바라간(1902 ~ 1988)의 쿠아드라 산 크리스토발(1968) / 알바로 시자(1933 ~ )의 팔메이라 수영장(1966) 등 아름다운 서양건축들은 독자의 눈을 즐겁게 했다. 서울 금호동의 달동네 골목과 한국집의 마당, 종묘정전宗廟正殿(1395 ~ 1608), 삐쩍 마르고 훤칠하게 키가 큰 자코메티 조각, 김정희의 추사체, 피트 몬드리안(1872 ~ 1944)의 ‘브로드웨이 브기우기’(1943)와 김환기(1913 ~ 1974)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가 건축가의 탁월한 시선에 잡혔다.

건축가의 글에 매혹되었다. 기다릴 수가 없었다. 20년 전에 절판된 책은 중고서점에서도 구할 수 없었다. 『빈자의 미학』은 건축가 승효상의 ‘자기 선언’이면서 새로운 ‘시대정신’이었다. 여러 출판사에서 복간을 제안했다. 건축가는 ‘선언’ 그 자체로 남겨두고 싶다고 독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백안시(?)했다. 1996년 첫 출간된 지 정확히 20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다. 20년간 깊은 우정을 나눈 시인 박노해의 간곡한 당부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가장 먼저 잡은 책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박노해의 시이기도 했다. 개정판 추천의 글에서 시인이 말했듯이 『빈자의 미학』은 단순한 건축 책이 아니었다. 삶의 철학과 방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너도나도 졸부의 꿈을 이루려 염치도 버리고 정서도 버리고 문화도 버리고 오늘날의 국적도 정체성도 없는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냈다.”(31쪽) 『빈자의 미학』은 가난한 이가 아니라 가난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건축 미학이었다. ‘빈자의 미학’은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했다. 도시와 건축은 공동체의 지속을 위해 서로 열려 있어야 하며, 비어 있는 우리의 옛 공간이 훨씬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건축가 승효상의 큰 울림이 전해지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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