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세컨드 핸드 타임

대빈창 2017. 6. 19. 07:00

 

 

책이름 : 세컨드 핸드 타임

지은이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옮긴이 : 김하은

펴낸곳 : 이야기가있는집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발음하기도 힘든 기자 출신의 벨라루스 작가를 만난 것은 순전히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때문이었다. 1986년 4월 구 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을 다룬 책을 찾았다. 체르노빌 방사능이 삼킨 자들의 참혹함을 그린 『체르노빌의 목소리』(새잎, 2011)가 손에 잡혔다. “플로베르가 자신을 가리켜 인간의 펜이라고 한다면 저는 인간의 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리를 지날 때면 단어들, 문장들, 외침들이 제 귀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의 일부다. 작가는 인터뷰한 내용을 다큐멘터리 산문 형태로 풀어내는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라는 독특한 문학적 형식을 창안했다.

『세컨드 핸드 타임』은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끌어올린 결정적 작품이었다. 1991년 ~ 2012년. 스탈린에서 푸틴 시대까지 1,000여명의 사람들 -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투르크메니스탄인, 우크라이나인, 카자흐스탄인 등을 인터뷰하여 연방 해체 뒤 모든 것이 뒤바뀌어버린 소비에트 사람들의 들뜸, 불안, 희망, 좌절, 분노를 그렸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직전 작가 알렉산드르 그린은 “왠지 미래는 자기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을 그만둔 것 같다.”고 글을 썼다. 이에 작가는 말했다. “100년이 지난 오늘, 미래는 또다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다. 바야흐로 세컨드 핸드 타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부제에서 말한 호모 소비에티쿠스(Homo Sovieticus)는 러시아 사회주의혁명이 만들어 낸 소비에트식 발상·사고·행동을 지닌 ‘새로운 인간’을 뜻했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비롯해 모든 것을 갖다 바친 사람들이었다.’(9쪽)

 

“사상 자체는 훌륭했었지! 하지만 인간을 도대체 어떻게 바꾸겠다는 거야? 고대 로마시대부터 쭉 인간은 변하지 않았어.”(250쪽)

“사회주의는 연금술이예요. 연금술적인 사상이예요. 앞을 향해 날아갔는데, 결국 어디에 도착한 건지 알 수가 없어요.”(380쪽)

 

20개의 실화로 묶여진 인터뷰 소설(목소리 소설)의 한국어판은 650쪽이 넘는 두꺼운 부피였다. 표지 사진은 떠나고 싶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의 고뇌가 느껴지는 카테리나 로모노소비치의 「Trevillion Images」다. 작가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여성들이 겪은 처참함을 그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문학동네, 2015)에 이어 세 번째 잡은 책이었다. 나는 ‘목소리 소설’에 중독(?) 되었다. 책장에 『마지막 목격자들』(글항아리, 2016)과 『아연 소년들』(문학동네, 2016)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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