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직파 벼 자연재배
지은이 : 김광화·장영란
펴낸곳 : 들녘
논두렁 깍기 / 논 갈기 / 논 보메기 / 논두렁 바르기 / 볍씨 준비 / 논두렁 풀베기 / 로터리·써레질 / 볍씨 뿌리기 / 물 빼기 / 눈 그누기 / 논 고랑 내기 / 왕우렁이 넣기 / 솎아 심기 / 김매기 / 물 떼기 / 물 걸러대기 / 논 말리기 / 볍씨 거두기 / 갈무리 / 볏짚 썰어 넣기 / 논 수평 맞추기 / 쌀겨 거름 뿌리기 / 논 갈아엎기
책은 봄·여름·가을·겨울 4부로 나뉘어, 벼농사 직파(直播)재배의 일하는 순서로 정리했다. 20여 년 전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귀농한 김광화·장영란 부부는 18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다. 벼 직파 재배는 8년차다. ‘싹을 틔운 다음에는 다른 잡초와 경쟁에서 우위에 서게 해야 하는 것. 잡초와 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면 직파재배는 반쯤 성공한 거나 다름없다.’(43쪽) 논에 볍씨를 직접 뿌리는 직파재배의 핵심이다. 농부는 ‘논 수평을 잘 맞추고, 왕우렁이를 잘 이용하면 어렵지 않다.’(9쪽)고 직파 논 관리의 경험을 얘기했다.
그렇다. 유기농 벼농사 제초의 일등공신은 왕우렁이다. 이웃섬 볼음도는 친환경농법으로 명성이 높았다. 논 면적 55만평에서 40만평을 화학비료·농약 없는 친환경으로 재배했다. 유기농의 가장 골칫거리인 제초를 왕우렁이로 해결했다. 2년 전 혹독한 가뭄으로 저수지 바닥이 드러났을 때 어쩔 수없이 많은 농가는 자연재해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모내기를 할 물이 없어 논바닥이 거북등 갈라지듯 했다. 언감생심 우렁이 농법이라니. 지금 볼음도의 우렁이농법 재배면적은 10만평이다. 안말 농가들이 관정을 뚫거나 어쩔 수없이 콩·배추를 심어 명맥을 유지했다. 고마운 일이다.
‘손 모내기도(······) 여러 집과 어울려 품앗이로 했다. 모내기철이면 보름 정도는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일에 쫓겼고, 허리 펼 시간조차 드물었다.’(117쪽) 이른 아침을 먹고 품앗이 일꾼들은 못자리로 향했다. 한 움큼 찐 모를 지푸라기로 동인 모춤을 경운기로 논마다 운반했다. 머리통 굵은 소년들의 몫은 모쟁이였다. 못자리용 비닐을 길게 무논에 늘어뜨리고 모춤을 실었다. 비닐 끝자락을 어깨에 메고 논 구석구석 다니며 알맞은 간격으로 모춤을 던졌다. 연장자 두 분이 못줄을 잡고 열댓 명의 일꾼들이 허리를 숙이고 일제히 손모를 꽂았다. 그 시절 노련한 상일꾼이 하루 손으로 낼 수 있는 모내기 면적은 200평이었다. 모쟁이들은 모가 딸리면 논두렁에서 모춤을 알맞은 거리에 던졌다. 사타구니에 논물이 틘 아주머니의 눈총을 받으며. 허기가 지면 눈길은 연신 마을로 향했다. 어머니가 앞장서고 동네 할머니들이 머리에 함지박은 인 채 일렬로 좁은 논두렁을 타고 오셨다. 함지박마다 밥, 국, 찌개, 반찬, 막걸리, 물이 들렸다. 용수로를 옆구리에 낀 경운기용 농로에 앉아 새참·곁두리로 들밥을 먹었다.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가난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 도울 수 있었던 농촌공동체는 붕괴되었다. 천민자본주의는 인간을 개별화·원자화시켰다. 인간은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기계로 전락했다.
‘만일 자신이 먹을 음식을 누구나 스스로 마련한다면 그 누구도 힘들지 않을 것이다.’(244쪽) 마지막은 농부의 시 「목숨꽃」(281쪽) 전문이다.
한여름 뜨거운 볕 / 푸르른 벼 잎 사이
이삭 따라 하나둘 / 벼꽃이 피네.
꽃잎도 없이 핀 / 실밥 같은 꽃술
보일 듯 말 듯 / 실바람에 흔들리누나.
그 꽃 하나 쌀 한 톨 / 꽃 한 다발 밥 한 그릇
벼꽃이 피네 / 목숨꽃이 피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