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발 달린 벌

대빈창 2017. 5. 24. 07:00

 

 

책이름 : 발 달린 벌

지은이 : 권기만

펴낸곳 : 문학동네

 

2015년 출판사 〈문학동네〉시인선에서 눈에 띄는 세 권의 시집이 출간되었다. 2002년 나이 쉰에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하고 13년 만인 예순 셋에 첫 시집을 낸 김연숙의 『눈부신 꽝』.  1999년 〈시와반시〉를 통해 등단하고 16년만인 나이 오십에 첫 시집을 낸 류경무의 『양이나 말처럼』. 2012년 〈시산맥〉을 통해 등단하고 쉰일곱에 첫 시집을 낸 권기만의 『발 달린 벌』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늦깍이 시인들이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65편이 실렸고, 해설은 시인 이홍섭의 「시의 힘, 설국으로 가는 기차」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독학으로 문청 시절을 보낸 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청신함과 남성적인 힘이 느껴진다. 홀로 절대를 향해 자문자답한 자의 고독이 서려 있다.”(90쪽)고 해설은 늦깍이 시인의 성실함을 추켜세웠다. 시인은 고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군 제대 후 울산 현대자동차에서 30년간 보일러를 만지는 생산직 노동자로 일했다. 어려서부터 관심이 많던 문학을 뒤늦게 시작했고 이제 결실을 맺었다.

대공장 노동자 시인으로 나는 당연히 노동시를 찾았지만 헛수고였다. 이상향을 노래한 서정시들이 눈에 뜨였다. 마지막은 시편들의 주요 소재와「카페 오감도」(74쪽)의 1연이다.

 

 

우르밤바 / 바이칼호 / 타클라마칸 / 고란사 / 배리 삼존불 / 황룡사 구층탑 / 경주박물관 / 불영계곡 / 7번 국도 / 섶섬이 보이는 돌담집(이중섭의 집) / 소래포구 / 욕지도 / 주남 저수지 / 이도백하 / 몽마르트

 

바람의 잔기침에도 삐걱거리는 카페 문, 각혈 때 열리는 이상(李箱)의 입 같다 지금 누른 의자가 내 궁둥이를 쓰다 듬는다 때대로 창문이 마른기침을 뱉는다 창밖 가로등 아래 바삐 달려온 13인의 왼손잡이 아해(兒孩)들이 마지막 각혈 때 떨어져나온 신경질처럼 카페 문을 열었다 닫는다 이제 거리엔 도무지 서툰 어른들뿐, 이상이 앉았던 탁자 위 꽃병이 꽃을 한 움큼 꺽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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