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신神들의 마을

대빈창 2017. 5. 22. 06:34

 

 

책이름 : 신神들의 마을

지은이 : 이시무레 미치코

옮긴이 : 서은혜

펴낸곳 : 녹색평론사

 

‘우물에 뛰어드는 고양이도, 돌담 아래 바다로 뛰어드는 고양이도, 바닷가에 떨어진 죽은 새들을 건져다 놓고도 먹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날들이 이어졌다.’(34쪽) 1953년 12월. 일본 남단 시라누이 해(海) 연안의 미나마타 시(市)에 사지마비·청력장애·시야협착·의식장애·보행장애·광분 상태를 일으키는 괴질이 번져갔다. 미나마타병이라 이름 붙은 병의 원인은 신일본질소비료(짓소) 공장의 오폐수 무단방류였다. 아세트알데히드 초산 공장에서 생성된 메틸수은 화합물이 정화되지 않고 미나마타 만(灣)에 방류되었다. 맹독은 어패류에 축척되었고, 이를 섭취한 어부들이 가장 피해가 컸다. 어패류를 먹은 고양이와 사람들은 뼈가 뒤틀리고 뇌가 쪼그라드는 고통 속에 서서히 죽음을 맞았다. 미니마타병 환자는 1만명이 넘었다.

그때 이시무레 미치코는 1927년생 새댁으로 무명작가였다. “옛날 같으면 목에 칼을 차고 감옥에 앉을 일이다. 그럴 각오는 되어 있는 것이냐.”(323쪽)라는 아버지의 벼락을 맞으며, 작가는 30여 년에 걸쳐 ‘동양의 덕성이 그 체질에 감추고 있는 전체주의와 서구 근대가 기술의 역사 속에서 관철해온 합리주의의 더없이 황폐한 결합에 의해 일본 근대 화학산업은 발전하였고, 이 열도의 골수에 파고든 썩은 종양의 한 부분을 미나마타병 사건’(49쪽)을 《고해정토(苦海淨土)》(1969 - 2004)를 통해 보여 주었다.

“구름이나 아마쿠사 섬들, 하늘의 푸르름을 감싸 안고 빛을 발하고 있는 시라누이 바다, 그 위를 떠다니며 새우잡이를 하는 ‘고요한’ 돛단배”(46쪽)를 형상화한 것 같은 표지그림 우키요에(浮世畵) 목판화가 눈길을 끌었다. 그림 옆 문구 - 《고해정토》 3부작 중 압권으로 평가받는 제2부 《신들의 마을》 - 나의 아둔함이여. 『슬픈 미나마타』(달팽이, 2007)는 《고해정토》의 1부작이었다. 1부는 미나마타병이 사회·정치 문제화되기 이전, 남들이 모르는 피해 어부들의 고통을 그렸고. 2부 『신들의 마을』은 1956년 환자가족 29세대가 소송제기에서 ‘짓소’의 주주총회 출석까지를. 3부 『하늘 물고기』는 ‘짓소’의 도쿄 본사점거와 투쟁을 지원하는 시민회의의 움직임을 그렸다. 3부가 출간되었으면 좋겠다.

『신들의 마을』은 병원 기록, 신문 기사, 청원서, 유인물 같은 온갖 자료를 동원하여 소설에 국한되지 않는 논픽션의 여러 글쓰기가 혼재되었다. 책은 미나마타병에 걸려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못다 한 삶을 그렸다. 이시무레 미치코는 “산업공해가 변방의 촌락을 정점으로 발생했다는 것은 자본주의 근대산업이 체질적으로 하층계급에 대한 모멸과 공동체 파괴를 심화 시킨다.”고 근대문명의 핵심적 어둠을 꿰뚫었다. 인간과 사회, 문명에 깃든 심원하고 비통한 통찰력이 빚어 낸 일본 문학의 압권이었다.

“진보하는 과학문명이란 보다 복잡하고 합법적인 야만세계로 역행하는 폭력지배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49쪽) 귓전에 오래 여운을 남겼던 미나마타병 환자가족 순례단에서 찻잔 나르는 일을 맡았던 겸손한 작가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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