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정진규 시선집
지은이 : 정진규
펴낸곳 : 책만드는집
153*225 신국판의 양장본은 520여 쪽으로 사전류 부피를 자랑했다. 시선집의 구성은 단출했다. 自序와 본문, 문학연보로 구성되었다. 自選으로 묶여진 시편들은 첫 시집 『마른 수수깡의 평화』(1996. 9. 1, 母音社)에서 열두 번째 시집 『本色』(2004. 6. 15, 천년의시작)까지 398편이 실렸다. 정. 진. 규. 이름 석자는 내께 낯설었다. 1939년생으로 적지 않은 시력을 자랑하는 시인이었다. 이력을 보니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했다. 문창과 출신의 사촌 여동생의 모교였다. 시인의 강의를 들었을 연배였다. 시편마다 불쑥불쑥 한자가 튀어나왔다. 전공자가 아니면 시편을 이해하기는커녕 읊조리기도 힘들었다. 시편의 행간을 짚어가는 나의 눈길은 서툴렀다. 근 일주일 여의 시간이 흘러갔다.
그 여자와 이별하면서 나는 그 여자에게 이제 어머니로 돌아가라고 말한 바 있다 너는 이제 어머니가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여자는 함께 있으면 계집이 되고 헤어지면 어머니가 된다 그게 여자의 몸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별」(421쪽)의 전문이다. 순전히 이 한편의 시로 인해 부피 두꺼운 시선집을 잡게 되었다. 시인 손세실리아의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에서 시를 처음 접했다. 시인들에게 ‘최고의 시구’가 무엇인지 묻는 기획 특집에서 가장 먼저 떠올렸다는 시구였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이보다 슬픈 시구를 아직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손세실리아 시인은 『국토』의 시인 조태일에게 시작법을 배웠다. 하지만 詩에 대한 텍스트를 만나지 못했다. 정진규의 『몸詩』와 『알詩』를 통해 깨달았다고 한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시인에게서 '시인을 시'로써 만나게 된 충격적인 감동을 준 ‘벼락 치듯 전율시킨 최고의 시구’가 궁금했다. 그리고 두꺼운 책술을 한 장씩 정성껏 넘겼다. 아둔한 나는 벽력과 전율은커녕 무덤덤했다. 어쩔 수 없었다. 시대와 사람을 사랑하는 민중시와 참여시의 덕목이 나에게 더 중한 것인지 모르겠다. 시를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근원적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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