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아들아, 넌 어떻게 살래?
지은이 : 최용탁
펴낸곳 : 녹색평론사
아버지!
그 날, 음력으로 오월 열아흐레 저녁
다음 날 모를 심는다며 아버지는 논물을 보고 오셨지요.
그리고는 여럿이 함께 갈 데가 있다며
휑하니 다녀오시겠다고 흙물 밴 무명고의 그대로
사립문을 나서셨지요.
우리는 모깃불을 피워놓고 아버지를 기다렸어요.
금방 돌아와 모를 심고
그 모가 자라 흰 쌀이 되면
보름달처럼 배부를 추석 이야기를 했어요.
멀리서 쿵쿵 거리며 대포소리가 들려와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다시 아버지를 모지 못한다고는
아무도,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것이 이승에서 마지막이었네요, 아버지
그 세월이 육십년이네요.
얼마나 가슴 아프셨어요. 남은 식구들, 어린 자식들
눈에 밟혀 먼먼 황천길 어찌 발길 떨어지셨나요.
다들 힘들고 아픈 세월을 보냈어요.
소리 죽여 울고 가슴 속으로만 삭이며 삭이며
마음껏 아버지를 불러보지도 못했어요.
그 세월이 육십 년, 아아, 육십 년이었어요.
이제야 밝은 대낮에
그 날 함께 가신 영령들 모두 모이셨습니다.
억울해 차마 감지 못했던 눈
2010년 7월 23일 충주시 호암예술관에서 열렸던 합동위령제에서 작가 최용탁이 읊었던 위령시 「아픈 세월 육십 년」이다. ‘내 할아버지는 전쟁이 터지자마자 예비검속에 걸려 군경에게 죽임을 당했다.’(164쪽) 작가의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는 충주 국민보도연맹학살사건의 희생자였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6월 5일 이승만 정권이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사상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반공단체였다. 1949년 말 연맹 가입자는 30만명에 달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권은 북한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민보도연맹원 전원을 처형하라는 특별 명령을 내렸다. 전국의 군대, 경찰, 교도소는 체계적으로 국민보도연맹원을 학살했다. 충주의 학살은 싸리고개 산골짜기에서 1950년 7월 5일에서 8일까지 사흘 사이에 7백여명을 총살했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녹색평론》에 2년여 연재되었던 사멸 직전에 다다른 한국 농촌과 농민의 현실을 드러낸 글, 2부는 한국일보와 농정신문에 실렸던 짧은 글모음, 3부는 2014년 갑오농민전쟁 120주년을 맞아 동학혁명의 자취를 더듬는 기행문이다. 작가는 갑오년 동학혁명이 내용이나 전투의 규모, 처절함에 있어 1871년 파리보다 훨씬 뜨거웠던 코뮌으로 내세웠다. 집강소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인민이 국가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치와 자립의 민주주의를 실천했던 기구였다. 혁명기간 내내 가장 비타협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지도자는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개남(開南)’으로 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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