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대밭

대빈창 2017. 8. 10. 07:00

 

 

책이름 : 대밭

지은이 : 이광웅

펴낸곳 : 문학동네

 

1982년 겨울. 전주 - 군산간 시외버스에서 금서로 지정된 월북 시인 오장환의 『병든 서울』 필사본이 발견되었다. 광주민중항쟁을 헬기와 탱크까지 동원한 무자비한 학살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에게 절호의 먹이감이었다. 오송회(五松會) 사건 - 고교 교사 간첩단 사건.  전북도경 대공분실은 군산제일고 교사 이광웅을 주동자로 전·현직 교사 9명을 불법 연행하여 20여 일간 모진 고문으로 간첩단을 조작했다.

이광웅는 오장환의 시집 필사본을 몇몇 선생들과 나누어 보았으며, 학교 뒷산의 소나무 아래에서 4·19와 5·18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위령제를 열고 시국을 토론했을 뿐이었다. 이광웅 시인은 사상범을 수감한 광주 특사 독방에서 감옥생활을 시작했다.  전주교도소로 옮긴 1년여 만인 1987년 6·29 선언으로 특별 사면되어 풀려났다. 4년 6개월의 영어생활이었다.

1988년 8월 군산 서흥중학교에 복직되었다.  전교조 해직교사로 다시 교단에서 밀려났다. 모진 고문 후휴증으로 1992년 12월 22일 여동생집에서 운명했다. 시인은 대부분의 책이나 습작시를 압수당했다. 누이들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시편들이 첫 시집 『대밭』으로 어렵게 햇빛을 볼 수 있었다. 감옥에서 쓴 시와 출옥직후 1년 반 동안 가슴에서 끓어올랐던 시들이 두 번째 시집 『목숨을 걸고』로 나왔다. 세 번째 시집 『수선화』는 세상을 타계하기 얼마 전 세상의 빛을 보았다.

 

「대밭 - 이광웅」(조재도, 『백제시편』, 실천문학사, 2004)

「그 사람 있습니다 - 이광웅 선생님을 그리워하면서」(김영춘, 『나비의 사상』, 작은숲, 2013)

 

두 편의 시에서 시인 故 이광웅을 만났다. 군산 금강하구둑 시인의 시비는 대표작 「목숨을 걸고」가 친필로 새겨 있다.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목숨을 걸고』는 품절되었다. 극랄한 한국현대사의 어둠을 밝혔던 시대의 양심 故 이광웅의 첫 시집을 운 좋게 손에 넣었다. 서문에서 시인의 미망인이 밝혔듯이 《문학동네 - 포에지 시리즈 17번째》로 1988년에 재출간되었다. 고마운 인연이었다. 시집은 3부에 나뉘어 40 시편이 실렸고, 발문은 문학평론가 전정구의 「눈이 맑은 시인」이다. 마지막은 표제작 「대밭」(22 ~ 23쪽)의 1연이다.

 

대밭에 살가지 쪽제비 시글시글 댓가지를 분질러놓으며 댓잎사귀 짓이겨놓으며 바스락 소리 밤새 끊어지지 않는 밤이 깊었다. 새암 두덕에 두룸박 소리 긁히고 부딪히고 쌀 씻는 소리랑 큰동세 작은동세 주고받는 목소리 뒤세뒤세할 때까지 한쪽 귀퉁이 이불귀를 끌어 잡아댕겨가며 대밭을 떠내밀며 잠을 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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