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내 몸에 내려앉는 지명(地名)

대빈창 2017. 8. 14. 05:36

 

 

책이름 : 내 몸에 내려앉는 지명(地名)

지은이 : 김정환

펴낸곳 : 문학동네

 

출판계에 몰아치는 재출간 - 오래전에 나왔다가 절판된 책을 출판사를 옮겨 다시 펴내는 방식 - 바람에 나는 희희낙락했다. 뒤늦게 시집을 잡으며 절판된 시집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문학동네〉는 ‘문학동네 시인선’ 시리즈의 이전 시집을 연말에 다시 펴내기로 했다. 〈민음사〉는 원문과 번역본을 함께 싣는 ‘세계시인선’을 창립 50주년을 맞아 다시 펴냈다. 〈문학과지성사〉는 ‘문지시인선 R' 시리즈를 기획해 절판 시집들을 지속적으로 펴내고 있다. 재출간 전문 출판사 〈최측의농간〉이 등장했다. 〈펄북스〉, 〈느린걸음〉도 행렬에 걸음을 같이했다.

시인의 1983년작 『황색예수전』이 재출간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성질 급한 나는 온라인 서적에 풀방구리 드나들 듯하며 검색창을 두드겼다. 시인 김정환이 펴낸 책은 무려 200여권에 달했다. 시, 소설, 희곡, 인문학 번역서 등. 시인에게 미안했다. 80년대를 대표하는 민중시인의 시집 한 권 없다니. 엉뚱하게 시인이 번역한 부피 큰 양장본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거울』이 책장 한구석을 차지했다. 미안함이 한 몫 차지했다. 나는 시인의 근작 시집을 손에 넣었다. 해설과 발문 없이 3부에 나뉘어 40편이 실렸다.

 

공지영 / 김인숙 / 편혜영 / 김태희 / 신학철 / 김숨 / 이시영 / 이병창 / 진중권

 

시편 제목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나는 2부에 실린 십여 쪽이 넘는 3편의 장시(長詩)가 인상적이었다. 신학철 화백의 그림을 보면서 한국 현대사를 읽어 나가는 「構想의 具象, 혹은 중력의 수평―신학철(1944~   )작,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2002, oil on can-vas, 130 X X200㎝, 8pieces/122x200㎝, 8pieces). 좌에서 우로도 읽음.」, 세월호 참사를 다룬 「물 지옥 무지개―세월호 참사의 말」, 소비에트의 붕괴와 미 제국주의의 민낯을 드러 낸 「최근 미국 사정―그리고 슬픈 순간의 영원, 1990년 서라벌레코드사 발행〈The Classic Collection on Melo-diya Of The USSR〉」 마지막은 1980년 등단 이래 민중에 대한 애정을 장시로 노래하는 시인의 진면목이 드러난 「물 지옥 무지개―세월호 참사의 말」(62 ~ 74쪽)의 부분이다.

 

1

자식 잃은 부모들, 슬픔에 희망이 없다. 슬픔을 모르는 자 더욱 희망이 없다.

 

3

시신 안고 사선 넘는 잠수부 도로(徒勞)에 희망이 없다. 도로를 도로라 하는 자 더욱 희망이 없다

 

6

죽은 어린이날이 있다. 죽은 어버이날이 있다. 죽은 스승의 날이 있다. 오 그 밖에 이러고도 세상이 돌아가다니, 우리가 살아 있기는 한 건가?

 

14

어른의 희망이었던 아이들의 그 아픈 무지개가 있을까? 있단들 우리가 볼 볼 수 있을까, 있단들 볼 자격이 있을까?

 

29

내 이름은 세월호 참사. 울음이 나라의 한몸일 때까지 울어보자.

 

30

무지개 떴다. 무지개 떴다. 여기가 물 지옥, 퉁퉁 불은 무지개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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