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지은이 : 신영복
펴낸곳 : 돌베개
2013년 - 『변방을 찾아서』 / 2014년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2015년 -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 2016년 -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 2017년 - 『처음처럼-신영복의 언약』.
새해 첫 리뷰는 될 수 있는 한 신영복 선생의 책으로 잡았다. 작년 새해 벽두 들려 온 신영복 선생(1941 ~ 2016)의 타계 소식에 가슴 한구석에서 덜컥 무언가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의지가 나약한 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유혹에 쉽게 흔들렸다. 그때마다 선생의 엄혹한 모스크바 사동 대전교도소의 독방에 갇힌 영어의 몸을 떠올렸다. 2010. 5. 3. 개설한 나의 블로그 〈daebinchang〉의 1000번째 글은 당연히 선생의 책 차지였다. 1주기 특별기획으로 추모 유고집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대담집 『손잡고 더불어』, 선생의 잠언 필사노트 『만남』이 세트로 투명 박스에 예쁘게 포장되었다. 성질 급한 나는 예약판매로 일찌감치 손에 넣었으나, 막상 책장을 넘기는데 한없이 게을렀다.
책은 3부로 구성되었다. 1부는 선생 스스로 삶을 구분한 ‘감옥 이전 20년, 감옥 20년, 감옥 이후 20년’의 인생을 반추한 글모음이다. 눈에 뜨이게 바탕색이 다른 종이에 인쇄된 7편의 글은 선생이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되기 전에 쓴 ‘미발표 유고’였다. 2부는 신문과 잡지에 쓴 사색과 성찰 에세이, 3부는 선생의 사상의 정수가 담긴 글들로 책의 추천사, 발간사, 발문, 옮긴이의 말 등이 실렸다. 선생의 연대체로 쓰여 진 동요 「시냇물」이 표지그림이다. 이 짧은 노래는 선생이 20년 동안 출소자 송별식에서 부른 노래였고, 성공회대 종강파티 순두부집에서 부른 노래였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나의 대학시절’이라 부르는 ‘감옥 20년’에서 선생은 인간의 본질을 ‘존재’가 아닌 ‘관계’로, 사상의 본질을 ‘차가운 머리’가 아닌 ‘뜨거운 가슴’이라는 거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지식인의 창백한 관념성을 벗어던졌다. 선생을 새로운 인식으로 이끈 이들은 교도소에서 만난 밑바닥 인생들이었다. 불학무식한 노인은 현란한 언어로 도배질된 여류 수필가의 글을 딱 한마디로 일도양단했다. “자기(수필가) 집 뜰이 좁아서 꽃을 못 심는다나 뭐 그런 걸 썼어.” 성이 정씨이고 큰 대(大), 옳을 의(義)를 쓰는 젊은 친구를 만났다. 선생은 이름을 지어 준 할아버지가 얼마나 속상해하셨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젊은이는 고아로 광주의 도청 앞 대의동(大義洞) 파출소에 버려졌고, 그날 당직 경찰의 성이 정씨였다. 나이 많은 목수가 땅바닥에 꼬챙이로 집을 그렸다. 주춧돌부터 그려 올라가 지붕으로 마무리했다. 선생은 여기서 민중의 정직하고 정확한 인식의 출발을 보았다.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光化門)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다.
책의 마지막 꼭지는 2013년 5월 12일 『한겨레』에 실린 「‘석과불식’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의 언어」 였다. 2016 ~ 2017년 겨울을 뜨겁게 달군 촛불혁명을 미리 예견한 듯한 '우리 시대의 스승'의 예언자적 면모가 전율을 일으켰다. 선생의 자상한 음성이 나태해지는 나를 일깨웠다. "한 사람의 일생이 정직한가 정직하지 않은가를 준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일생에 담겨 있는 시대의 양(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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