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

대빈창 2017. 8. 7. 06:29

 

 

책이름 : 고르게 가난한 사회

지은이 : 이계삼

펴낸곳 : 한티재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2009, 녹색평론사)

『변방의 사색』(2011, 꾸리에 북스)

『청춘의 커리큘럼』(2013, 한티재)

『고르게 가난한 사회』(2016, 한티재)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시대 올바른 삶의 전형을 보여주는 이계삼의 책을 네 권 째 잡았다. 저자는 1991년 대학에 입학했다. 나는 안산 공단의 화공약품 공장노동자였다. 백골단 폭력진압으로 강경대 열사가 사망했다. 연이은 죽음으로 거리는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했다. 저자는 2001년 경기 김포 통진중 국어선생으로 교단에 첫 발을 내 디뎠다. 나의 모교였다. 2015년 12월 20대 총선에서 저자는 녹색당 비례대표 2번이었다. 나는 비례대표는 녹색당에 던졌다.

저자는 현재 고향인 밀양에서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아 어르신들과 핵마피아 세력에 맞서 투쟁하는 지역 활동가다. 11년간 몸담았던 교직을 2012년 2월 그만두었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위한 농업학교를 준비하다 이치우 어르신의 분신 사망을 계기로 현장에서 주민들과 함께 송전탑반대투쟁을 해 왔다.

 

마을공화국 / 밀양송전탑 / 일제고사 / 입학사정관제 / 기본소득 / 귀농학교 / 학교폭력 / 핵발전소·피복 노동자 / 노들장애인야학 / 혁신학교 / 진주의료원 폐업·무상급식 폐지 / 잔혹 동시 / 인성교육범실천연합 / 나꼼수 / 녹색당·진보신당 / 메르스 / 세월호 / 4대강 사업 / 통진당 강제 해산 / 체르노빌·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 규제완화 / 비정규직 노동자 - 이랜드·기륭전자·KTX 여승무원·코드콤·GM 대우

 

책은 진보언론에 6년여 동안 발표한 글을 묶었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벌어진 목불인견의 사건들을 파헤쳐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연신 더운 김을 내뱉게 만들었다. 1970년대 레바논 진보사회당 지도자 카말 줌블라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악마적인 과정을 중단시키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주의 사회이며, 그것은 고르게 가난한 사회이다."

 

저자의 고향은 밀양 남포리로 태어나서 12년을 살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가곡동에서 제일 못사는 강변마을. 날품팔이로 살아가는 이웃들이 골목에서 주정과 쌈박질로 하루를 보내는 고향을 저자는 지금도 그리워했다. 신작로에 늘어선 키 큰 미루나무와 새까맣게 날아오르던 청둥오리떼, 꽁꽁 언 강에서 종일 지친 썰매놀이가 그리웠다. 그 시절 저자의 고향 남포리는 ‘고르게 가난한 사회’였다. 지금은 국도 확장공사로 뒷산에 터널이 뚫렸고, 강건너 벌판은 고속도로가 금을 그었다. 풍요롭던 강은 상류의 댐과 낙동강 하구둑과 4대강 공사로 녹조라떼 수로로 변했다. 100여 가구가 살던 마을은 이제 늙고 퇴락해 10여 가구 남짓 남았다.

나의 고향은 김포 도사리로 태어나서 42년을 살았다. 가난한 소작농들이 몇 필지의 벼농사로 자급자족하던 들녘마을. 눈 쌓인 벌판에 새까맣게 기러기가 내려앉았고,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타던 언덕 꼭대기 나의 초가집이 눈앞에 삼삼했다. 그 시절 내 고향 도사리는 ‘고르게 가난한 사회’였다. 모세혈관처럼 들녘 구석구석을 파고들던 한강 지류는 일직선의 콘크리트 수로가 되었다. 영세공장에서 마구 버리는 폐수로 우렁이 한 마리 살지 못하는 죽음의 수로로 변했다. 한강신도시 개발바람으로 김포 황금벌판에 아파트 숲이 솟아났다. 착해 빠져 법 없이도 살았던 농투성이들은 도회인들의 머슴(?)으로 돈을 샀다. 인류의 암울한 미래는 빈곤이 아닌 풍요를 구가하는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고르게 가난했으므로 나눔과 유대가 숨쉴 수 있었고, 아직 돈에 오염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적이었던 것이 지난 시대의 ‘가난’이었다.”(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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