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

대빈창 2017. 9. 28. 07:00

 

 

책이름 :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

지은이 : 박형진

펴낸곳 : 열화당

 

출판사 이름이 낯익다. 강원 강릉시 운교동의 선교장(船橋莊)은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 제5호다. 300여 년 전 영조 때 효령대군 후손이 경포대 인근에 지은 사대부 고택이다. 예전 경포호를 배타고 건너다니던 시절, ‘배다리 마을’에 위치해 붙여진 이름이다. 열화당(悅話堂)은 선교장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로 지어 준 건물로 동판을 이어 차양을 만들었다. 출판사는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인 강릉 선교장 내 건물의 이름을 따서 1971년 세워졌다.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중 ‘열친척지정화(悅親戚之情話)’에서 따왔다. 이는 “가까운 이들의 정다운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는 의미다. 선교장의 열화당은 영동지방 유가의 본산으로 수천 권의 서책을 갖춰놓고 문집과 족보를 찍어내고 필사했던 지역 문화공간이었다. 50년을 출판 일에 종사해왔던 열화당 대표 이기웅(77才)은 말했다. “출판은 고성장, 고수익의 논리가 지배하는 장이 아니라 지적 생산자인 저자와 수요자인 독자의 교류와 발전을 위한 터전이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열화당의 책들은 독자에게 아부(?)를 떨지 않았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이래 출판계의 사정은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현재 출판계는 잘 팔리는 책 위주의 시스템으로 출판사간 출혈경쟁은 더욱 심화되었다. 온라인 서적은 10%의 할인과 5%의 포인트로 독자를 유혹했다. 열화당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도서에 할인가격과 포인트가 없다. 도서할인제가 출판시장을 죽이는 현실을 열화당은 정면돌파하고 있었다.

 

『바구니 속 감자싹은 시들어가고』(시집 - 1994, 창작과비평사)

『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산문집 - 2003, 디새집)

『콩밭에서』(시집 - 2011, 보리)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연장 부리던 이야기』(도감 - 2016, 열화당)

 

전북 부안 모항에서 농사짓는 시인 박형진의 책을 네 권 째 잡았다. 책은 농기구 88가지에 대한 유래와 크기, 재료, 사용법과 제작 및 수리법을 상세하게 담았다. 100여 컷의 사진이 실렸는데 농촌 현장 사진은 사진가 황헌만의 작품이고, 농기구 사진은 농업박물관의 도움을 받았다. 표지 사진은 위에서부터 논에 모를 심기 위해 쟁기로 갈아엎은 흙덩이를 풀어 헤쳐 부드럽게 만드는 써레. 길들인 소의 등에 얹어 짐을 실을 수 있는 안장인 길마. 밭을 일구거나 흙덩이를 부수고, 외양간·마구간·돼지우리의 거름을 쳐내는 데 쓰는 쇠스랑. 사람이나 가축의 똥오줌을 담아 나르는 오지장군. 농부시인답게 경험이 빚어낸 절묘한 표현에 절로 엉덩이가 들썩였다. 낫에 대한 이야기다. ‘날을 벼려 쓰는 연장일수록 쓸 때 힘의 강약과 속도의 빠르고 느림, 그리고 선의 직곡直曲이 뒤엉켜서 춤추는 듯한 부드러움과 벼락 치는 듯한 순간이 손끝에서 섬세하게 일어나야 한다.’(125쪽)

‘순전히 키질하는 사람의 손기술에 의한 것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세기와 키를 숙이는 정도, 그리고 밖으로 밀어내듯 부쳤다가 끌어당기는 미세한 조정 때문이다. 그러므로 키질을 잘하기란 참으로 어렵다.’(208쪽) 농사일은 오랜 경험으로 단련된 손기술이 필요했다. 소 같은 사람도 저녁 밥숟갈 놓자마자 통나무 쓰러지듯 쓰러져서 잘 수밖에 없는 노동 강도를 견뎌내는 강단은 필요조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