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버드나무와 별과 구름의 마을

대빈창 2017. 10. 18. 07:00

 

 

책이름 : 버드나무와 별과 구름의 마을

지은이 : 임의진

펴낸곳 : 작은것이아름답다

 

“남녘땅 강진, 정약용의 유배지 다산초당을 지나면 동백숲이 아름다운 백련사가 나온다. 거기서 조금 더 가다보면 아담하고 예쁜 남녘교회가 있다.” 책장에서 먼지가 뽀얗게 핀 판화가 남궁산의 장서표 이야기 『인연을, 새기다』를 펼쳤다. 장서표의 판화그림에서 펼쳐진 책은 분명 성경이었다. 책 주름에 소박한 나무십자가가 후광을 발하며 우뚝 서있다. 세 잎의 새싹이 피어났다. 판화가는 덧붙였다. “요즘 남녘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찬송가는 운동가요 〈그날이 오면〉이다. 그 날은 다름 아닌 조국의 ‘통일’이다.” 수구세력 한국교회의 주류가 남녘교회를 보는 색깔은 시뻘겋다. 대부분이 시골 할머니들인 신도수 30명의 작은 교회는 장기수 송환을 위한 기도회, 반전평화 기원 예배, 통일음악회 행사와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김민기의 노래를 찬송가로 부르다니 괘씸하게. ‘쪼개진 하늘을 머리에 이고 더는 살아갈 수 없어 흰 소매를 적셔 온 세월이 아프고 북녘 하늘이 그리움에 사무쳐’ 이름을 지은 교회였다.

시인 목사가 1995년 남녘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처음 나눈 시가 「마중물」이었다. “부처나 다른 종교를 믿어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설교한 목사는 교회에서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논밭 두 마지기의 농사로 생계를 해결했다. 겨울 땔감은 산에서 장만했다. 나무로 구들을 덥히는 집은 흙집 목사관이 마을에서 유일했다. 목사는 기약 없는 안식년을 선언한 뒤 전남 담양 산골에 흙집을 짓고 12년째 살고 있다.

 

우리 어릴 적 작두샘에 물길어 먹을 때 / 마중물 이라고 있었다

한 바가지 먼저 윗구멍에 붓고 / 부지런히 뿜어 대면 그 물이 / 땅 속 깊이 마중 나가 큰물을 데불고 왔다

마중물을 넣고 얼마간 뿜다 보면 / 낭창하게 손에 느껴지는 물의 무게가 오졌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준 사랑이 / 우리들 곁에 있다

누군가 먼저 슬픔의 무저갱으로 제 몸을 던져 / 모두를 구원한 사람이 있다

그가 먼저 굵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기에 / 그가 먼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꿋꿋이 / 견뎠기에

 

「마중물」(92쪽)의 전문이다. 시집은 2부에 나뉘어 모두 114편이 실렸다. 1부 「자연과 여행이 들려 준 목소리」는 다문화가족 송년축제에서 빨간 양말을 선물로 받고, 원고료로 생태농법 잡곡 쌀을 받았다. 흙집 마당에 파초를 심고, 생강을 깎다 문둥병자를 떠올리고 교회 헌금으로 미황사 범종불사를 했다. 시인 목사의 발걸음은 삼팔선 민통선과 팽목항, 제주 강정 구럼비 바위, 죽음의 수로가 된 4대강에 머물렀다. 티베트의 라싸, 동티모르 커피 농사꾼 초대전, 내몽골을 다녀왔다.  2부 「노래가 된 시들」은 브르디옹의 시, 미국·아일랜드 민요, 스노우맨, 존 바에즈, 마노스 하지다키스, 밥 딜런, 무디 블루스, 존 레넌의 노래들을 옮겼다. 해설은 생태환경월간지〈작은것이아름답다〉의 편집장 김기돈의 「글썽이는 마음, 숨결 같은 사랑- 임의진의 자유여행 시편」 이다. 표제 『버드나무와 별과 구름의 마을』에서 버드나무는 4대강 개발로 영산강 일대에서 잘려나간 버드나무를 가리켰다. 별은 닉네임 떠돌이별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을, 구름은 유토피아를 뜻했다. 마을은 사회 안으로 들어온 교회를 의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