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지은이 : 김경주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무림일기』, 『여장남자 시코쿠』,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견딜 수 없네』, 『환상수족』, 『나는 너다』, 『기억이동장치』, 『겨울밤 0시 5분』, 『왜가리는 왜가리놀이를 한다』, 『분명한 사건』, 『어느 별의 지옥』
각 출판사의 품절된 시집의 재출간 소식은 뒤늦게 시집을 손에 펴든 나에게 반가운 소식이었다. 절판된 시집을 복간하는 〈문학과지성 시인선 R〉 시리즈가 열두 권 째를 펴냈다.〈문학과지성 시인선〉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는 표지의 시인 컷 그림이다. 〈문지 시인선 R〉은 시인의 컷 그림이 앞날개로 옮겨왔다. 나는 이중 다섯 권을 손에 넣었다. 시집의 초판본은 2006년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나왔고, 절판된 시집을 《문지》에서 2012년 복간했다. R 시리즈 복간 1차분으로 나온 시집을 나는 4년 만에 찾았다. 귀가 엷어진 것인가. ‘한국어로 쓰인 가장 중요한 시집’,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 ‘한국문학의 축복이자 저주이다’ 등. 못 말릴 정도로 열광한 문단의 가장 화려한 찬사를 받은 시인의 데뷔시집. 하지만 나는 사실 시큰둥했었다.
4부에 나뉘어 54편이 실렸고,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해설 제목 「불가능한 감수성」이 시사하듯 시인은 ‘주목할 만한 2000년대 시인’, ‘우리 시대 대표 젊은 시인’으로 각종 문예지에서 너도나도 손꼽았다. 시집에 대한 세상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연극과 미술과 영화의 문법을 넘나드는 다매체적 문법과 탈문법적인 언어의 범람, 낭만적 감수성의 극한’을 추구한 혁신적인 문법에 문학계와 시집을 찾는 독자는 열광했다. 누군가 얘기했듯 시인 김경주의 등장은 2000년대 한국 시단의 가장 뜨거운 사건이었다. 마지막은 표제로 인용된 「부재중(不在中)」(76쪽) 일부분과 첫 시 「외계(外界)」(13쪽)의 전문이다.
아무튼 나 없는 빈방에서 나오는 그 시간이 지금 내 영혼이다 나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충혈된 빗방울이 창문에 눈알처럼 매달려 빈방을 바라본다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 그림이 되지 않으면 /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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