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이 時代의 사랑

대빈창 2017. 11. 20. 07:00

 

 

책이름 : 이 時代의 사랑

지은이 : 최승자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신간 시집을 서핑하다 시인을 만났다. 빈센트 밀레이의 삶과 죽음에 관한 성찰이 담긴 『죽음의 엘레지』를 번역했고, 작년에 여덟 번째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가 출간됐다. 내가 고교를 졸업하던 해인 81년에 초판이 출간된 첫 시집을 손에 넣었다. 출간된 지 35년이 넘어 선 시집은 46쇄를 찍었다. 시인이 自序에서 밝혔듯이 시집은 시기별로 3부에 나뉘어 56편이 실렸다. 3부의 시들은 대학 3학년 때부터 대학을 그만둔 해까지의 시들을 씌어 진 순서대로 묶었다.

시인은 고려대 재학 중 교지 『고대문화』의 편집장을 맡았다. 독재자가 총통제를 노리던 유신시대. 시인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 시절 나는 시는커녕 책과 담을 쌓고 살아가는 천둥벌거숭이였다. 가난으로 대학진학이 좌절당한 젊은 혈기는 술과 주먹질로 나날을 소일했다. 80년대 중반, 형제의 도움으로 대학에 들어갔다. 공장노동자로 삶을 살다 몸을 다치고 낙향했다. 외딴 섬에 정착하고 책을 잡다 뒤늦게 시집을 펼쳤고 시인을 만났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김치수의 「사랑의 방법」이다. 묵은 시집이었다. 나는 문학평론가 정과리. 번역가 김석희. 소설가 이인성, 최수철, 임철우. 시인 황지우, 이성복이 떠오르는 세대였다. 시인은 80년대 박노해, 황지우, 이성복과 함께 대중에게 사랑받은 인기 시인이었다. 도대체 나의 편식은 끝을 몰랐다. 40여년이 다 된 묵은 시집을 펼치고서 시인을 만났다. 현대시사에서 자기만의 가장 독보적인 시언어를 확립했다는 시인은 시편마다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말했다. “아직도 자본주의적 질서에 물들어 있는 세계로부터 자신을 유폐시키는 부정성의 언어를 밀고 나감으로써 그러한 세계의 오염을 견뎌 내려는 고독한 자의식에 붙들려”있다고. 마지막은 첫 시 「일찌기 나는」(13쪽)의 전문이다.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 마른 빵에 핀 곰팡이 /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힌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 너당신그대, 행복 /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있다는 것, /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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