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흔들린다

대빈창 2017. 11. 13. 07:00

 

 

책이름 : 흔들린다

글쓴이 : 함민복

그린이 : 한성옥

펴낸곳 : 작가정신

 

집에 그늘이 너무 크게 들어 아주 베어버린다고 / 참죽나무 균형 살피며 가지 먼저 베어 내려오는 / 익선이 형이 아슬아슬하다

나무는 가지를 벨 때마다 흔들림이 심해지고 / 흔들림에 흔들림 가지가 무성해져 / 나무는 부들부들 몸통을 떤다

나무는 최선을 다해 중심을 잡고 있었구나 / 가지 하나 이파리 하나하나까지 /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 흔들려 덜 흔들렸구나 / 흔들림의 중심에 나무는 서 있었구나

그늘을 다스리는 일도 숨을 쉬는 일도 /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직장을 옮기는 일도 / 다 /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리고 /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고 / 가지 뻗고 이파리 틔우는 일이었구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 창비)에 실린 「흔들린다」의 전문이다. 〈작가정신〉의 시그림책 시리즈 문을 여는 책은 우리나라 그림책 1세대 작가 한성옥이 삶이 흔들림의 연속이라고 말하는 함민복의 「흔들린다」를 시각 언어로 형상화했다.

2017년 입동 여명이 막 터오는 시각, 강화도를 향하는 객선에 몸을 실었다. 나의 손에 주문도산 첫 자연산 굴이 들렸다. 나만의 연례행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여 년 전 시인은 강화도 마니산 기슭 화도 동막의 기울어가는 농가에 둥지를 틀었다. 그 시절 이맘때였다. 굴통을 들고 시인의 집으로 향하는데, 마을 입구의 모퉁이에서 시인이 차를 세웠다. 한길에서 마니산 기슭으로 이십여 미터 올라가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집 한채가 나타났다. 온 집터에 그늘을 드리운 거대한 나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익선이 형네 참죽나무였다. 셋은 나무아래 둥그런 야외 탁자에 둘러앉아 굴회를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였다.

화도 동막의 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농가는 헐리고 펜션이 들어섰다. 시인은 길상(시인의 인삼가게 이름은 ‘길상이네’) 온수의 월세 방으로 옮겼다. 길상 장흥의 처마 낮은 황토 집에 전세로 신혼살림을 차렸다. 강화도에서 네 번 이사한 끝에 시인은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벌써 반년이 되었다. 길상에서 화도로 넘어가는 여우고개 밑 소담마을이었다. 당호(堂號)가 은암재(隱巖齋)였다. 은암재는 소담마을 가운데 자리잡은 시인과 같은 연배인 느티나무 뒷집이었다. 숨을 은(隱), 바위 암(巖), 집 재(齋). 시인의 고향은 두메산골 충북 중원 노은(老隱)이었다.

집필실과 거실의 벽유리로 정족산의 가을이 통째로 들어왔다. 단풍이 고왔다. 은암재는 정족산 자연숲을 후원으로 삼았다. 정족산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시인의 집 뒤에 건물이 들어설 수 없다. 고마운 현실이었다. 뒷산 능선을 따라 오르면 강화도 제일의 사찰 전등사가 나타날 것이다. 시인의 스승 오규원이 10년 전 잠든 소나무가 지척이었다. 거실과 유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사각형 작은 연못에 수련이 떠 있었다. 경북 안동 도산서원의 작은 방지 정우당(淨友塘)이 떠올랐다. 시인이 선한 웃음을 지었다.

 

“작은 새들이 연못에서 목욕을 하고, 두꺼비가 어슬렁거리며 기어와 물을 묻히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

 

나는 은암재의 연못이 부러웠다. 시인의 몸이 날렵해졌다. 술을 멀리한지 꽤 해가 묵었다. 시인은 익선이 형이 참죽나무 가지치기하는 모습에서 나무의 떨림을 보고,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 일의 고단함과 아슬아슬함을 노래했다. 시인을 만난 지 20여년이 되었다. 나의 삶에서 시인과의 인연도 ‘흔들려 흔들리지 않으려는’ 떨림이었는지 모르겠다.

 

〇 〇 〇 친구에게 / 물맛 좋은 날들 되시길 / 2017. 입동 / 함 민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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