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한국정원답사수첩
지은이 : 역사경관연구회
펴낸곳 : 동녘
나의 책장에는 그동안 두권의 전통정원에 관한 책이 꽂혀 있었다. 그것은 허균의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와 박정욱의 '풍경을 담는 그릇, 정원'이다. 표제에서 알수 있듯이 전자는 조선의 선비가 작정했던 원림이 중심 서술이었고, 후자는 인문학적 시각으로 조감한 전통정원이었다. 그런데도 무엇인가 아쉬웠던지 나는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온라인 서적에 들어가 시장바구니에 던져 넣었고, 이렇게 되새김글을 긁적이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을 지은 '역사경관연구회'에서 낯익은 조경학자 강영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몇년전 강영조 교수의 '풍경에 다가서기'와 '풍경의 발견'이라는 두권의 책을 잡고부터 나는 저자의 글에 중독된 마니아가 되었다. 이 책도 저자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발견하였기에 더욱 반갑다. 비닐 커버를 덧씌운 표지는 소프트 양장으로 턱없이 비싼 요즘 양장본의 책 가격을 멀리하는 배려를 독자에게 베푼다. 만약 이 책이 하드커버로 제본되었다면, 만만치않은 지금의 가격에 얼마가 더올라 많은 독자가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그리고 책 내용은 우리 전통정원에서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세심하게 일러준다. 전통정원에 관심있는 답사객들을 위한 실질적인 가이드로 이땅의 40여곳의 정원에 대한 깊이 있는 안내가 실려있다. 산과 투쟁하듯이 이를 악물고 산마루를 뛰어다녔던 철부지 시절과 이념에 대한 한때의 허망함으로 문화재 답사에 목메었던 세월을 지나, 나는 이제 느린 걸음으로 전통정원을 소요하고 싶다. 어딘가를 떠나려는 나의 배낭 한구석을 차지하기에 이 책은 부족함이 없다.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주문도에 터를 잡자, 예전보다 발걸음이 잦아진 작은 형이 언젠가 지나가는 소리로 말했다. '이상하게 이 집에만 오면 나는 편안하다.' 왜 그럴까. '한강의 기적'을 이룬 급속한 경제성장의 주인공답게 이 땅의 사람들은 노동기계로 전락하지 않았는가. 그러기에 알게모르게 '빨리빨리'라는 도시적 삶의 리듬에 익숙해져 오히려 갑갑할텐데. 나는 그 편암함을 이 땅의 전통고가들이 앉은 자리, 즉 배산임수에서 찾는다. 우리 집은 섬에서 가장 높은 봉구지산의 자락에 바투 앉아있어 제법 지대가 높다. 그러기에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것은 차경(借景)으로 '외부의 경관을 남김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조성'한 우리 전통정원 작정의 한 기법이다. 또한 전통정원에서는 인공연못을 조성했는데, 우리 집앞은 거대한 자연 못인 바다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러기에 아파트라는 몸의 편암함보다는 마음의 편함을 찾아 나는 이곳에 터를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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