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2009 이상문학상작품집
지은이 : 김연수외
펴낸곳 : 문학사상사
신년이 되고 첫달이 지나갈 무렵, 이상문학상작품집은 출간된다. 수많은 문학상수상작품집 중 내가 유일하게 제1회 작품집부터 소장하고 있었다. 외딴 섬에 터를 잡으면서 서재를 꾸미고 책장을 새로 앉히고, 책을 정리하자 1993년인 제17회 작품집부터 눈에 뜨였다. 그럼 그 이전 작품집은 어디 갔을까. 세월은 거슬러 올라간다. 90년대 초 현장노동자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쓸데없이 책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좁은 자취방에 책들을 쌓아두고 지냈다. 그리고 92년 안산 화공약품 공장에서 구로 마찌꼬바로 옮기면서 애물단지인 책들을 마침 지역노동자문학회 준비모임에 기증했다. 대중적이지 못하고 학출의 먹물근성에 찌든 강력(?)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옹호론자가 이런 부르조아 문학작품집을 빠진 이 하나없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나를 보며, 문학회 간사는 이상스런 표정을 짖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하긴 지금의 나의 위치에서 바라보았을때 그시절 경직된 나의 문학관에 대한 미안함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시절 간사는 노동자문학회를 준비하면서 얼치기 문학도인 나에게 초빙 시인의 선정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그때 신생 지방공단도시에 이땅의 대표적 문학 출판사에서 시집을 막 펴낸 시인이 살고 있었다. 간사는 시인과의 인연으로, 문학에 관심있는 공단 노동자의 첫 모임에서 그 시인이 직접 자신의 시를 낭독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하지만 나의 경직된 혁명적 이념(?)은 그 시집의 어휘 선택부터 못마땅했다. 노동자와 민중은 수탈과 억압의 신산한 삶에 빠져 있는데 낭만적 시구라니. 나의 머릿속에는 김남주나 백무산, 박노해의 민중, 노동해방 시 구절들이 무수히 떠올랐다. 과도한 이념의 노출은 경직성에 다름 아니라는 나의 그 시절 초짜 모습이었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대상 수상작인 김연수의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보다는 수상 후보작인 정지아의 '봄날 오후, 과부 셋'에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확실하다. 그때 문학회에 기증한 책 가운데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 '3권이 묻어들어 갔을 것이다. 이 책은 90년에 실천문학사에서 출판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살아, 아니 MB정권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판금된다. 책을 구입하는 데 있어 누구보다, 판단력이 빠른 나의 선택이 빛을 발해, 소설의 시대적 역사성의 기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격정의 한국근대사의 굴곡진 삶을 헤쳐온 소설 속 세 명의 과부 노인에게서 나는 작가의 어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간답고 평등한 세상을 꿈꾼 빨치산을 부모로 둔 작가. 이름 '지'는 지리산에서, '아'는 백아산에서 따왔다. 해방정국에서 부모님의 해방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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