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라는 소설가 만들기
지은이 : 오에 겐자부로
옮긴이 : 김유곤
펴낸곳 : 문학사상사
- '빗방울'에 풍경이 비치고 있다. '물방울'속에 다른 세계가 있다. - 이 짧은 두 개의 시 구절이 이 책을 잡게 된 인연의 전부이다. 위 시는 일본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중학생 시절 긁적거린 시로 그의 일생 중 최초로 활자화된 글이었다. 나는 위 구절을 환경단체 '풀꽃평화연구소가' 보낸 준 웹진에서 발견하고, 그 구절이 인용된 이 책을 바로 구입했다. 아시아에서 세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최초이자, 최후의 문학적 자서전. 참고로 아시아의 문학상 수상자는 1913년 인도의 타고르가, 1968년에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오에 겐자부로가 1994년에 수상했다. 나는 저자의 소설을 단 한편도 접해보지 못했다. 아니, 그것은 순전히 나의 외국소설에 대한 기피증상 때문이었다. 나의 폐쇄적인 국내문학 작품에 대한 집착은 글의 문학성보다는 작품 이해에 있어 나의 정서적 이해에 대한 편향의 문제인 것 같다. 지금 책장을 훑어 보아도 고작 10권 이내의 외국문학 작품이 꽂혀있을 뿐이다. 이 책은 출간된지가 10년이 다 되온다. 왜 이제야 나의 눈에 뜨였을까. 뒤늦은 발견은 자신의 턱없는 문학적 역량을 익히 알면서도 미련만 남는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연말이면 신춘문예라는 열병에 빠지는 이 땅의 문청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나는 그동안 소설 창작 방법론에 관한 책은 모조리 손에 넣었다. 쉽게 말해서 우리 문단에서 제법 알려진 작가들은 자신의 소설 창작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의 소설 창작 방법론에 관한 책을 펴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은 고사하고 천박한 자기현시욕으로 문학을 대한 것이 솔직한 그동안의 나의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매진하기 보다는 어이없이 지름길을 찾는 방편으로 이름난 작가들의 소설 창작론을 부지런히 읽어댔다. 뻔하지 않은가 그 결과는. 근 10여권의 책은 나에게 도움은 커녕 문학적 자질에 대한 환멸만 키웠다. 언젠가 술김에 음악잡지 편집장을 하는 사촌동생에게 책장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던 그 책들을, 작고한 젊은 작가 김소진의 전집을 탐내는 동생 손에 함께 안겨주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소설과의 인연은 꽤 묵었다. 문학평론가인 담당교수가 현대소설론 리포트로 창작 단편소설 제출을 요구했다. 나는 여름방학 내내 끙끙거리며 난생처음 창작에 매달렸다. '흉몽이 된 돼지꿈' 전두환 정권의 살농정책을 비꼰 첫 습작이었다. 문학적 재능 운운에 고무된 나는 제법 에닐곱 편의 습작품을 생산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현장 생활을 하면서 그 원고지 뭉치는 민중의 가슴을 펜으로 찌르는 하찮은 짓거리로 매도되어 주인 손에 의해 불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