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느리게 사는 사람들

대빈창 2009. 7. 17. 10:23

 

 

책이름 : 느리게 사는 사람들

지은이 : 윤중호

펴낸곳 : 문학동네

 

 

아쉽고 허탈하다. 시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안타깝게 시인은 2004년에 타계했고, 나는 4년이 흐른 작년에야 유고시집이 된 '고향길'을 손에 넣었다. 시집은 나의 손을 기다린 채 책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있다. 내가 정기구독하는 잡지인 녹색평론이 펴낸 어느 단행본을 잡다가 '고향길'의 발문이 평론가 김종철의 글이라는 것을 알고 시집을 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온라인 서적 검색창에 지은이를 두드리니, 이 책이 떠올랐다.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다. 21세기 첫년에 출간된 이 책은 무려 10여년을 나의 손을 기다린 것이다. 그렇다. 여적 초판 발행이다. 책이름을 보면서 나는 대번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의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이라는 문인기행 산문집을 떠올렸다.

이 책은 지은이가 사연 많고 가슴저린 삶을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준 사람들에 대한 짧은 찬사를 엮은 글 묶음집이다. 책의 구성은 3부로 나뉘었지만, 크게 나누어 삶의 진지함과 성찰을 가진 인물 30명과 세태에 찌들려 '빨리빨리'를 부르짖으며 삶을 헛되이 소비하는 현대인에게 곰삭은 우리 고유의 전통을 일깨어 주는 사물 10개에 대한 글로 나눌 수 있다. 저자 특유의 능글맞고 정감 넘치고 구수한 문체로 독자의 입가에 슬며시 잔웃음을 짓게 만든다. 시인의 글을 사후에 만난 것도 안타깝지만 내가 더욱 서운한 것은 '책을 펴내며'에 실린 시인의 다음과 같은 약속 때문이었다. '(뒷골목 사부님들)의 한심해 보이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지만, 우선 말하기 편한 덜 한심한 분들 먼저 얘기를 해보자 싶은 생각 때문이다.' 즉 맛보기의 글이 이렇게 가슴에 와 닿은데, 정작 우리 앞에 펼쳐질 뒷골목 파노라마를 어쩔 수없이 놓쳤다는데 있다.

'윤중호는 제발 밥이나 술이나 빨리 먹고, 걸음도 빨리 걸었으면 좋겠다.'는 동네 형님뻘 되는 이의 표사 중( )로 묶인 부분이다. 이로 미루어보아 시인은 행동이 매우 굼떴던 모양이다. 그 느림이 나에게 전염되었는가. 그래도 책읽기에는 게으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시인은 사후에 나의 레이다망에 뒤늦게 포착된 것이다. 여기서 시인의 느린 행동은 나에게 천민자본주의에 편입되지 않으려는 개성으로 보였다. 또한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살가운 애정과 약삭빠르고 어찌보면 정직하기 보다는 비열(?)한 인간이 되기를 강요하는 현실에서 시인은 우리에게 천천히 주위를 훑어보며 걸으라고 넌지시 충고한다. 이렇게. '우리들은, 아무리 빨리 달려도 결국 돌아갈 곳은 한 자리일 것이고, 아무리 많이 쌓아 올려도 우리가 가져갈 것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는 결국 우리가 버리고 떠난 그 빈자리로 되돌아올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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