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귀토야생기(歸兎野生記) - 16

대빈창 2017. 11. 2. 07:00

 

 

 

 

 

봉구산자락을 따라가는 옛길을 걷습니다. 다랑구지 논들이 수확을 마쳐 환해졌습니다. 기러기 떼가 알곡을 주워 먹느라 논바닥에 새까맣게 앉았습니다. 녀석들은 주문도에서 겨울을 나고, 낮이 점점 길어져 햇살이 쏟아지는 절기가 돌아오면 자신의 고향을 향해 날개를 펼치겠지요. 가을걷이가 끝난 섬 풍경은 쓸쓸하다 싶을 정도로 황량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고구마 밭은 황토가 그대로 드러났고, 고춧대는 선채로 누렇게 말라갑니다. 바닷물 철썩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바다가 많이 부풀었습니다. 사리 물때입니다. 제방 길 왼편 산날맹이는 손을 베일 것처럼 날카롭습니다. 오랜 세월 바다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에 깎였겠지요. 잡목 숲은 추운 계절을 준비하느라 스스로 제 몸의 수분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산사면의 관목을 칡넝쿨이 덮었습니다. 제방과 잇닿은 산자락은 10m 높이의 아까시 나무들이 바다를 보며 좁은 띠를 이루었습니다. 키 큰 나무에서 떨어진 씨앗들이 포장된 제방을 따라 나지에 어린 아까시 숲을 일구었습니다. 아까시 숲을 바다에서 보면 자식을 앞세우고 포즈를 취한 가족사진처럼 보였습니다.

산책의 반환점인 제방이 끝나는 삼태기 지형 공터가 맨 땅을 드러냈습니다. 이곳은 섬 주민들이 상합을 채취하러 경운기가 갯벌에 들어서는 들목이며 주차장입니다. 산자락의 아까시 숲과 바다는 제방을 두고 코앞입니다. 풍랑이 일면 바닷물이 끼얹어져 흡사 불에 탄 것처럼 아까시 잎사귀가 우그러들었습니다. 절기는 상강을 지나 입동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까시 숲도 추운 계절을 준비하느라 누렇게 변색된 잎들을 발아래에 내려놓았습니다. 녹색커튼처럼 산자락을 가렸던 아까시 잎사귀가 떨어지자 줄기와 가지 사이로 숲속 땅바닥이 드러났습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웠습니다. 토진이가 거짓말처럼 석 달여 만에 나타났습니다. 녀석은 예전처럼 제방길가나 공터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아까시 나무가 잎사귀를 떨구고 녹색 커튼이 젖혀지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녀석은 3개월을 사람을 피해 아까시 숲속에서 살았습니다. 저는 토진이가 주인을 따라 온 반려견이나 유기묘에 생을 마감한 것은 아닌지 비탄에 빠졌었습니다. 세월이 약이다. 스스로 자신을 위로했었습니다. 녀석은 덩치는 그대로인데 털빛이 바랜 것처럼 보였습니다. 햇볕을 덜 쬐서 그런가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반가운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했습니다.

 

“어디 먼데 갔다 지 있는데 다시 왔나보다. 니보고 싶어서 왔을 거야.

 

영리한 토진이가 사람과 개와 고양이를 피해 아까시 숲속에서 3개월을 두문불출하고 있었습니다. 대빈창 해변 피서객들 일부가 이곳 토진이의 아지트인 삼태기 지형 공터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들은 텐트 이용료가 아깝다고 캠프장을 벗어나 이곳에 텐트를 치고 밤새 장작불을 지폈습니다. 그들이 데려 온 고양이와 개를 보며 토진이는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요. 어머니가 덩달아 기뻐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니가 걱정하니까 토끼가 얼굴 한번 뵈 준거야.”

 

계절은 점점 추워집니다. 아까시 나무도 추운 날씨를 이겨내려 거추장스런 옷을 모두 벗어버릴 것입니다. 토진이를 자주 볼 수 있는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녀석이 한없이 고마웠습니다. 몸이 작은 녀석은 아까시 숲 가시투성이 미로를 살금살금 옮겨다녔을 것입니다. 토진이는 사람들이 모두 잠든 새벽녘에 길가에 나와 풀을 뜯었겠지요. 햇살이 닿지 않는 숲속 바닥은 토진이의 먹을거리가 없었습니다. 날이 추워지면서 섬을 찾는 외지인들도 가뭄에 콩나듯 합니다. 토진이를 괴롭히던 진드기도 자취를 감추겠지요. 토진이가 이번 겨울을 나면 만 다섯 살이 됩니다. 녀석을 위해 기도합니다. 토진이가 하늘이 부여한 생을 온전하게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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