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유에서 유

대빈창 2017. 12. 26. 07:00

 

 

책이름 : 유에서 유

지은이 : 오은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술이 취하여 수첩에 쓴 술을 끊겠다는 글씨를 맨 정신으로 읽을 수 없었다는 「반성 16」이 실린 김영승 시인의 시집 『반성』을 온라인 서적 가트에 넣었다. 시집 한 권은 배송료를 지불해야했다. 그때 특이한 표제의 시집이 눈에 띄었다. 오은의 첫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민음사, 2009)이었다. 시인과의 첫 만남은 어설픈 우연이었다. 시집은 유쾌한 말놀이와 단어가 제공하는 재미가 유별났다.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문학동네, 2013)가 시선에 잡혔지만 나는 애써 모른 체 했다. 시간은 흘렀고, 세 번째 시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시집은 217쪽 분량으로 제법 두터웠다. 4부에 나뉘어 65편이 실렸다. 해설은 권혁웅(시인·문학평론가)의 「놀이와 혁명」이었다. 문학평론가는 서두에 인상주의 화가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1863)을 소개했다. 당대 화단에 일대 센세이션을 몰고 온 그림은 남녀 두 쌍이 숲에 피크닉 나온 정경을 그렸다. 신사들은 정장 차림인데, 여성은 알몸이거나 속옷 차림이었다. 피크닉 바구니의 과일과 빵이 여성의 속옷과 흩어져있었다. 남자들 사이의 알몸 여성은 앉은 채 고개를 돌려 관객을 응시했다. 그림은 19세기 매춘이 성행했던 파리의 실상을 드러냈다. 부르주아의 위선을 폭로했다. 해설은 「풀밭 위의 점심」과 『유에서 유』의 전복성을 나란히 했다.

『유에서 유』도 말놀이의 유희성은 여전했지만, 세상의 부조리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 칼을 내장했다. 자본주의, 교육제도, 생존경쟁, 기성세대의 시대착오적 관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은 시인은 현재 빅테이터 분석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시인이 문단에 나온 지 벌써 15년이 되었다. 등단도 보통 시인과는 남달랐다. 습작 시를 친형이 몰래 투고해 본인도 모르게 시인이 되었다. 표제는 「마술」(62 ~ 64쪽)의 9·10연에서 따왔다. 시인의 말에 따르면 표제는 "당신(YOU), 있음(有), 말미암다(由), 놀다(遊), 흐르다(流)를 포괄하는 단어"라고 했다.

 

유에서 유를 / 유에서 유를

5분 전처럼 투명하게. / 흐르듯 / 유에서 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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