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사할린 1·2·3
지은이 : 이규정
펴낸곳 : 산지니
부산의 지역 출판사 〈산지니〉를 알게 된 것은 전적으로 소설가 김곰치의 르포·산문집 『지하철을 탄 개미』를 잡고나서였다. 이름도 낯선 부산의 원로작가 이규정(80)의 3권짜리 장편소설 『사할린』을 처음 접한 것은 정기 구독하는 격월간지 『녹색평론』 통권 157호에 실린 문학평론가 이명원의 「사할린의 조선인 - 소설 《사할린》에 대하여」을 통해서였다. 나름대로 3대 문학평론가로 손꼽는 이명원의 글이 뇌리에 오래 머물렀다. 평론가는 글에서 세계에서 디아스포라적 상황에 처한 인구수가 가장 많은 민족 중 하나가 한민족일 것이라 했다. 열강의 침탈로 힘없는 조국의 불쌍한 백성들은 많은 수가 한반도를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고려인(구소련 지역), 조선족(중국 지역), 재일조선인(일본 지역), 1902년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최초 노동 이민을 떠났던 재미 한인 등. 그런데 또 다른 고려인들이 사할린에 있었다.
『사할린』은 다시 빛을 보기까지 21년이 걸렸다. 1996년 〈동천사〉에서 『먼 땅 가까운 하늘』로 출간되었으나, 당시 출판사의 사정으로 책은 곧 절판되었다. 작가는 국교가 수립되기 전이었던 1991년 구소련의 사할린을 어렵게 방문하여 현장 취재하였다. 소설은 1930년대 사할린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1990년대 초반 후손들의 사할린 방문으로 마무리했다. 면적 7500평방킬로미터, 섬의 길이가 925킬로미터, 폭의 넓은 곳이 62킬로미터, 좁은 곳이 25킬로미터, 총 인구는 50만명의 사할린(소련어)은 일본어로 가라후토, 왜식표현으로 화태(樺太)로 불리었다. 노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사할린의 남부 땅 절반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소설은 일제강점기에 속아서, 돈이 필요해서, 강제로 가라후토에 끌려간 탄광 노무자와 위안부의 눈물과 회한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해방될 때 사할린의 동포는 6만명에 가까웠다. 특수숙사 ‘다코베야’는 ‘문어집’이란 뜻이다. 이곳에 한 번 들어가면 사람이 문어처럼 흐물흐물해져 버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코베야에 들어간 노무자는 폐인이 되거나 완전히 바보가 되었다. 탈주자는 고문대회에서 병신이 되지 않으면 다코베야에 보내졌다. 고문으로 식물인간이 된 조선인들은 폐갱에 집어 던져져 생매장당했다.
소설가는 “역사의 파수꾼이자 현실의 증거자이다.”라고 작가를 정의했다. 1000쪽이 넘는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을 떠올렸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마지막은 부친의 유골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오매불망 고국을 그리워하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작가의 분신으로 여겨지는 최상필의 시다.
해협 하나 건너
바로 거기가 북해도인데
바다는 한사코 달아나기만 하였고
오오츠크의 사나운 파도만 밀려왔다.
남으로 향하여 말없이 앉아 계셨던 이곳
사할린스크 코르사코프의 언덕 위엔
까마귀 울음소리만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조선으로 가자, 조선!
하시던 조선은 저승길보다 멀었는가.
유지나야 까레야(남조선)의
길이 열렸는데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미 (0) | 2018.04.16 |
---|---|
죽음에 관한 유쾌한 명상 (0) | 2018.04.09 |
6은 나무 7은 돌고래 (0) | 2018.03.29 |
들끓는 사랑 (0) | 2018.03.22 |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0) | 2018.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