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6은 나무 7은 돌고래

대빈창 2018. 3. 29. 07:00

 

 

책이름 : 6은 나무 7은 돌고래

지은이 : 박상순

펴낸곳 : 민음사

 

『6은 나무 7은 돌고래』(민음사, 1993)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세계사, 1996)

『Love Adagio』(민음사, 2004)

『슬픈 감자 200그램』(난다, 2017)

 

1991년 계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 박상순의 시집이다. 시력 30년이 가까워오는데 시집은 고작 네 권이었다. 서양화를 전공한 미술학도라는 특이한 이력만큼이나 과작의 시인으로 첫 손가락에 꼽힐만했다. 작품 해설을 쓴 이승훈(시인·문학평론가)은 말했다. “박상순의 시는 우리 시의 새로운 방향을 암시하는 매우 전위적이고 따라서 낯선 느낌이 드는 시이다. 어느 시대에나 전위적인 예술가들은 당대의 미적 인식을 부정하는 자기 파괴성을 보여준다.”(95 ~ 96쪽)  ‘고독한 언어 예술가’ 박상순의 시는 독자들에게 낯설었다. 표제를 따온 시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 번째는 전화기」(90 ~ 91쪽)의 전문이다.

 

첫 번째는 나 / 2는 자동차 / 3은 늑대, 4는 잠수함

5는 악어, 6은 나무, 7은 돌고래 / 8은 비행기 / 9는 코뿔소, 열 번째는 전화기

첫 번째의 내가 / 열 번째를 들고 반복해서 말한다 / 2는 자동차, 3은 늑대

몸통이 불어날 때까지 / 8은 비행기, 9는 코뿔소, / 마지막은 전화기

숫자들이 장난감 / 아홉까지 배운 날 / 불어 난 제 살을 뜯어먹고

첫 번째는 나 / 열 번째는 전화기

 

내 손에 들린 시집은 2판 3쇄로 2017년 2월에 나왔다. 운이 좋았다. 1판 1쇄는 1993년 10월에 출간되었다. 회화에서 익힌 새로운 기법으로 후기 산업사회의 황폐한 삶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읽어내는 시인의 시집을 잡고 싶었다. 두 번째 시집 『마라나, 포르노 만화의 여주인공』은 일시품절로 중고 온라인 서적에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첫 번째 시집 『6은 나무 7은 돌고래』를 주문했다. 아쉽게도 품절이라는 딱지가 뒤늦게 붙었다. 시간은 흘렀다. 첫 시집이 재판되었고, 두 번째 시집은 〈문학과지성 시인선 R13〉으로 재출간되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출신 시인의 시집 두 권이 20여년 만에 내 손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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