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낯선 시선

대빈창 2018. 3. 12. 06:11

 

 

책이름 : 낯선 시선

지은이 : 정희진

펴낸곳 : 교양인

 

안태근(검사), 이윤택(연극인), 고은(시인), 조민기·조재현·오달수(영화배우), 김기덕·조근현(영화감독), 박재동(시사만화가), 배병우·로타(사진작가), 한만삼(신부), 안희정(정치인) ······.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성폭력·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이다.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한국사회.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가부장적 사회인 이 땅. 2018년 계급적·성적 이중 억압에 신음하던 한국 여성들이 힘겹게 싸움을 이어나갔다. 책장을 일별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이는 평화학·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이었다. 여성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폭력은 가부장제의 역사처럼 오래됐다. 여성이 겪는 일상적 폭력이 미투 운동을 통해 사회 문제로 드러난 것이다. 미투 운동은 아주 상식적인 범죄 고발이다.” 자칭 진보주의자로서 나는 미투 운동을 지지·응원한다. 하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도 내가 의식하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소수자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

한국은 30대 재벌의 매출 비중이 국내 총생산의 96.7퍼센트를 차지한다. 인구의 0.1퍼센트도 안되는 재벌과 그 일가가 국가경쟁력의 70퍼센트 이상을 점유하고, 99.9퍼센트의 사람들이 30퍼센트를 지키려 목숨을 걸었다. 한국은 '동성사회성(同性社會性)' 사회로 남성 연대가 사회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OECD 국가에서 남녀 임금 격차가 발표된 2000년부터 부동의 1위를 지켜왔다. 2014년 여성은 남성보다 36.7퍼센트를 덜 받았다. 2위 에스토니아가 26.6퍼센트였다. 2015년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29개 조사국중 29위를 기록했다. 세계경제포럼의 성차별 지수 역시 145개국 중 115위였다. 한국은 사회 복지 비용을 전적으로 가족 내 여성의 성 역할 노동으로 떠넘겼다.

 

금수저·흙수저 / 사이코패스 / 국정교과서 / 병역기피 / 자원외교 / 4대강사업 / 전시작전권 /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 물대포·시신탈취 / 군가산제 / 여성혐오 / 유체이탈(遺體離脫) 화법 / 표현의 자유 / 세월호 참사 / 색깔론 / 종북좌파 / 재벌공화국 / 무상급식 /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 스마트폰 / 양심의 자유 / 동성사회성(同性社會性,  homosocial) / 갑질·승자독식 / 기호식품 / 명절 스트레스 / 회식 문화 / 인사청문회 / 자살·우울증 / 전태일 분신 / 노무현 자살 / 웰빙·힐링 / 향락산업 / 더러운 잠 / 혼외성애 / 가족제도 / 알파고 / 표절 / 일베 / 소수자 혐오 / 간통죄·외도·성매매 / 시민단체 후원금 / 음주 문화 /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 외모 제일주의 / 치매 / KTX·서울 중심주의

 

책은 이명박 - 박근혜 정권 시기, 우리 시대를 특징지을 수 있는 사건을 여성의 눈으로 재해석한 글 61꼭지를 5부에 나뉘어 실었다. 어느 사회나 전체 인구의 51퍼센트는 여성, 10 ~ 15퍼센트는 동성애자, 10퍼센트는 장애인, 9퍼센트는 왼손잡이로 구성되었다. 무한경쟁,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정글의 법칙만이 횡행하는 이 땅. 사실 한국의 가장 오래된 적폐는 성차별이었다. 진보·보수 진영논리를 떠나 한국 사회는 성차별 구조가 고착되었다. 진보 진영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인권·민주주의를 내세웠던 젊은 정치인 안희정의 제왕적 성폭력 사건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여성학자는 지금 시대를 호모 셰임리스(뻔뻔한 인간)의 시대로 규정했다. “무능에 불성실, 탐욕, 인간성 종말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 지식인이나 사회 운동가, 여성주의자 중에도 상당히 많다. 좌우, 계급, 성별을 막론하고 시대를 표상하는 인간성의 출현”(207쪽)이다.  나에게 정희진의 글은 중독성이 강했다. 이것은 가부장제 의식과 마초에 찌든 한국 남자임을 반증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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