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거미

대빈창 2018. 4. 16. 07:00

 

 

책이름 : 거미

지은이 : 박성우

펴낸곳 : 창비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문학동네, 2003)

『거미』(창비, 2002)

 

틈만 나면 사이트에 들어가 일별하는 온라인 서적의 한국시 분야에서 가장 빈번하게 눈에 뜨이는 두 시인의 첫 시집을 손에 넣었다. 두 시인의 시집은 나올 때마다 새 책 코너의 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다. 삐딱한 나의 시선은 두 시인을 애써 피했다. 도리 없이 첫 시집의 신선한 매력을 핑계로 두 시인을 만났다.

시집은 모두 4부에 나뉘어 56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적 스승인 강연호(시인)의 「세상의 상처에는 옹이가 있다」다. 전북 익산 원광대 문창과 스승과 제자로 만난 시인의 문학 수업이 흥미로웠다. 스승은 지속적인 작품 제출을 요구했고, 제자는 매주 4, 5편의 시를 연구실 문 밑으로 밀어 넣었다. 학창시절부터 시인은 시 쓰기에 생애를 걸었다. 학창 시절, 나는 제법 소설 읽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문학과지성〉에서 펴낸 두 권 소설의 작가는 모두 원광대 출신이었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윤흥길과 『원미동 사람들』의 양귀자. 원광대 출신의 시인은 단연 『서울로 가는 전봉준』의 안도현이었다. 이제 『거미』의 박성우가 나만의 커리큘럼에 새로 가입되었다. ‘정갈하고 투명한 언어로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를 그리는 시인을 뒤늦게 만난 것이 서운했다. 나는 조급증을 느끼며 시인의 산문집과 시집을 서둘러 가트에 넣었다.

 

『박성우 시인의 창문 엽서』(창비, 2015) / 『웃는 연습』(창비, 2017) / 『자두나무 정류장』(창비, 2011) / 『가뜬한 잠』(창비, 2007)

 

시인의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작 「거미」가 낯이 익었다. 그렇다. 시인 이면우의 유명한 「거미」와 시인 김두안의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거미집」 때문이었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로 시인의 등단작인 「거미」(8 ~ 9쪽)의 전문이다.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 공중의 길, 아슬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 곤충의 마지막 날개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 사흘 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 어디론가 떠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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