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

대빈창 2018. 4. 23. 07:00

 

 

책이름 :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

지은이 : 김영현

펴낸곳 : 학고재

 

소설집 -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해남 가는 길』,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포도나무집 풍경』

장편소설- 『폭설』, 『풋사랑』

시집 - 『그후, 일테면 후일담』

산문집 -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 『죽음에 관한 유쾌한 명상』

 

그동안 내가 잡은 작가 김영현의 책들이다. 90년대 나는 김영현의 절대적인 마니아였다. 작가는 1984년 〈창비신작소설집〉에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등단작을 표제로 삼은 첫 창작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1989년)는 문단을 일대 충격으로 몰아넣으며, ‘90년대 문학 논쟁(김영현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현실 모순에 대한 천착을 쪽빛 우수와 서정으로 환치시키며 깊은 사색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단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을 때, 작가는 「문학이여, 나라도 침을 뱉어주마」라는 글을 발표했다. 일체의 활동을 중단하고 경기 양평에 칩거했다. 작가 김영현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철학서 『그래, 흘러가는 시간을 어쩌자고』(2014년), 장편소설 『누가 개를 쏘았나』(2014년)를 펴낸 1년 만에 ‘죽음은 생의 위안’이라고 도닥이는 『죽음에 관한 유쾌한 명상』(2015년)이 나왔다. 산문집 『나쓰메 소세키를 읽는 밤』을 잡은 지 10여 년 만에 작가의 책을 손에 잡았다. 이 구절을 발견하고, 나는 작가의 첫 산문집을 20여 년 만에 다시 펼쳤다.

‘내가 처음 해외여행이라고 간 것은 40대 초반, 시안(西安)에서 출발하여 둔황(敦煌)을 거쳐 우루무치로 가는 타클라마칸의 사막길, 이른바 실크로드였다. 20여 년 전이니까 중국이 막 개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죽음에 관한 유쾌한 명상』, 223쪽)

작가의 발걸음은 산둥반도와 난징을 거쳐 시안(西安)에 도착했다. 한 무제의 마오 릉(茂陵), 진시황 지하 병마용,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가 서린 별궁 후아칭즈(華淸池), 〈서유기〉의 삼장법사로 유명한 현장법사(玄裝法師)의 유적지 칭산사(慶山寺)에 머물렀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인 지아위관(嘉浴關)에서 숨을 골랐다. 시안에서 서역으로 가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허시후이랑(河西回廊, 란저우(蘭洲)의 서쪽에서부터 둔황까지 폭 100킬로미터, 길이 약 1,200킬로미터의 폭 좁은 복도처럼 생긴 길)을 지나 둔황(敦煌)에 닿았다. 모카오 굴(莫高窟), 밍사산(鳴沙山), 위예야 천(月牙泉)과 투루판에서 후오이엔산(火焰山)과 쟈오허(交河) 고성에 발길이 닿았다.

작가는 실크로드 기행의 마지막 밤을 우루무치(신쟝 성도省都)의 톈산의 천지(톈산 산맥의 보고타 봉 중턱에 있는 호수) 유르트(카자흐의 천막집)에서 보냈다. 술이 취해가면서 별들이 광주리로 쏟아 붓듯 하는 호숫가에 아무렇게나 벌렁 누웠다.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히며 비로소 자유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 지상의 날들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게 비록 한여름의 물방울과도 같은 것일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생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생이 끝나는 순간 다시 광활한 우주의 일부로 돌아가야 한다. 삶과 죽음은 그렇게 하나로 순환하지만 순환되지 않은 연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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