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견딜 수 없네
지은이 : 정현종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 내 마음 더 여리어져 /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 9월도 시월도 / 견딜 수 없네. / 흘러가는 것들을 / 견딜 수 없네. / 사람의 일들 / 변화와 아픔들을 / 견딜 수 없네. / 있다가 없는 것 /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 그림자들 / 견딜 수 없네. /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2001년 제1회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표제작 「견딜 수 없네」(32 ~ 33쪽)의 전문이다. 시집은 부 구분 없이 59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우찬제의 「어스름의 시학」이다. 아둔한 나는 ‘한국 시사(詩史)의 중추’로 평가받는 시인의 시집을 처음 펼쳤다. 내게 시인은 칠레의 혁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이 땅에 소개한 옮긴이로 먼저 다가왔다. 그동안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질문의 책』 두 권이 나의 손을 탔다.
2003년 〈시와시학사〉에서 처음 나온 시집은 시인의 시력에 새 획을 그었다. ‘전후의 허무주의와 토착적 서정시를 극복하고 고통을 초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한 초기시에서 ‘생명과의 내적 교감, 자연의 경이감, 생명의 황홀 등에 천착한 새로운 시 세계를 펼쳐 보였다’고 평가되었다.
(그러니 그의 정치적 백치 / 뒤에 오면서 늘어나는 과잉 능청 그런 것들은 / ‘악덕의 영양분’으로 섭취하는 게 좋으리. / 용서를 빈 바도 있으시고 / 브레히트의 ‘쉰 목소리’도 그럼직하며 / 관용은 정의를 비로소 정의롭게 하리니)
‘미당 서정주 선생을 추모하며 그의 시를 기리는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노래의 자연」(21 ~ 23쪽)의 부분이다. 서정주의 「푸르른 날」의 시구를 마지막에 인용하며 미당을 추모하고 기렸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견딜 수 없네’였다. 미당은 내게 ‘단군 이래 최대의 시인’일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엔 친일시를, 전두환 독재 정권의 하수인으로 일평생을 종천순일(從天順日)한 그를 나는 용서할 수 없다. 반민족적·반민중적인 고작 詩 나부랭이(?)를 잘 긁적인 시인중의 한 명일 뿐이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색평론 통권 160호 (0) | 2018.05.08 |
---|---|
잠들지 못하는 희망 (0) | 2018.04.30 |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 (0) | 2018.04.23 |
불편한 진실에 맞서 길 위에 서다 (0) | 2018.04.20 |
거미 (0) | 2018.04.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