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달궁 : 박달막 이야기

대빈창 2018. 5. 16. 05:33

 

 

책이름 : 달궁 - 박달막 이야기

지은이 : 서정인

펴낸곳 : 최측의농간

 

초판 출간 30년 전, 절판된 지 20년 가까이 된 서정인의 장편소설 『달궁』의 개정판이 나왔다. 113*181로 B6 46판 만화책 판형으로 두께는 무려 867쪽이었다. 개정판은 『달궁』(1987), 『달궁 둘』(1988), 『달궁 셋』(1990)의 개정 합본판이었다. 짜리몽땅한 몸피에 글자체는 작고 여백이 없어 읽어나가는 내내 눈이 다 시릴 정도였다. 재출간 전문 출판사 《최측의농간》 대표인 젊은 출판인 신동혁은 말했다.

 

“900쪽에 달하는 막대한 양과 교차적으로 얽혀있는 비선형적 이야기들, 실험적 형식으로 인해 좀처럼 읽기의 진도를 내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를 받아들인다면 분명 소설 읽기의 새로운 경험을 할 것이다.”

 

나의 게으름도 한몫했지만, 소설의 마지막 책장을 덮는데 무려 3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빽빽한 목차가 말해주듯 소설은 수많은 소제목을 가진 조각글의 모음집이었다. 조각글을 하나하나 손꼽으며 세었다. 너무 많았다. 270개거나 271개였다. 한 개가 2 ~ 4쪽으로 200자 원고지 10 ~ 15매 분량으로 모두 4000매에 가까웠다. 초판본 세 권의 소설은 각종 문예지에 수년간 33편의 연작 중단편 형식으로 발표된 것을 묶었다. 『달궁』은 전통 소설문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낯선 기존 소설의 외형적 틀을 부순 실험소설이다. 작가의 세계관이 구어체로 나타났다. 문장은 4·4조의 판소리 가락, 민중의 애환이 서린 민요의 형태로 일명 요설체(妖設體)라 불리었다.

부제 「박달막 이야기」는 작가가 직접 추가했다. 주인공 인실의 아(兒)명인 ‘딸맥이’에서 비롯되었다. 가부장제 사회로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1960년대 이 땅은 딸이 태어나면 끝순이, 딸맥이, 말순이, 말숙이 등 이름을 대강 지었다. 표제 『달궁』은 뱀사골에서 지리산 산속으로 5킬로미터 더 들어간 산속오지였다. 소설은 주인공 인실이 한국전쟁 중 부모와 헤어진 후 살아가는 파란만장한 삶을 그렸다. 해방, 여순사건, 한국전쟁, 4·19혁명, 5·16 쿠데타, 유신 독재, 5·18광주민중항쟁까지 반세기를 아우르는 수난과 격변에 내몰린 불의와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에 좌절당한 민중의 고난사였다.

 

‘세상에 인류의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반대하는 것으로 국시의 제일의를 삼은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91쪽)

‘우리 사회에는 네 가지 계급이 있어, 그 애 같이 장교 전용, 나 같이 하사관 전용, 장교건 하사관이건 흑인 전용, 그리고 아무나 받는 공용.’(4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