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지은이 : 유홍준
펴낸곳 : 창비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이 말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정확히 맞는 말이었다. 1991년 공장노동자 시절. 나는 진보적 월간지 『사회평론』에 연재되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처음 만났다. 잡지는 오래가지 못하고 폐간되었다. 고교시절 대입미술 실기시험 준비로 데생에 매달렸던 나는 글쓴이가 민미협 초대 대표임을 알아보았다. 1993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 - 남도답사일번지』가 창비를 통해 나왔다. 지은이는 「책을 펴내며」에서 고참 독자들에게 각별히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그렇다. 나는 고참 독자를 넘어 극성스런 마니아인지 모르겠다. 저자가 엮거나 풀거나 쓴 모든 책이 나의 책장 한 귀퉁이에 빼곡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현재 국내편 8권, 북한편 2권, 일본편 4권 모두 14권이 출간되어 400만부가 팔렸다. 가히 스테디셀러 중의 스테디셀러였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 기획은 총 4권으로 먼저 9·10권이 같이 나왔다. 9권은 서울 궁궐이야기, 10권은 한양도성과 주변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교토(京都)가 ‘사찰의 도시’, 쑤저우(蘇州)가 ‘정원의 도시’라면 서울은 단연 ‘궁궐의 도시’라고 힘주어 말했다. 조선 500년의 수도였던 서울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5개의 궁궐이 있다. 저자는 한국 궁궐 건축의 미학으로,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를 내세웠다. 책은 조선 왕조의 상징적 문화유산인 종묘를 시작으로 창덕궁과 창덕궁 후원(부용정, 규장각 주합루, 애련정, 연경당, 존덕정, 옥류천)의 정자, 창경궁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조선 왕조의 창덕궁 후원은 10만평의 산자락 골짜기를 그대로 정원으로 삼아 계곡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정원을 경영했다. 프랑스 건축가 로랑 살로몽은 한국 정원의 미학을 이렇게 간결하게 말했다. “인위적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자연 위에 그냥 얹혀 있는 느낌”(230쪽)이라고. 부제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은 존덕정(尊德亭)에 걸린 정조의 「만천명월주인옹 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에서 따왔다. 여기서 ‘만천명월주인옹’이란 말은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표지 사진은 눈이 하얗게 덮힌 종묘 정전이다.
나의 인생에서 수도 서울의 첫 나들이는 국민학교 6학년 봄 소풍 때였다. 그 시절 창덕궁의 후원은 ‘비원(祕苑)’이었고,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동물원과 식물원은 서울의 최고 유원지였다. 나는 시커먼 어린 촌놈이었다. 어머니께서 용돈으로 300원을 주셨는데, 뽑기에 정신이 팔려 소풍 첫날 수중의 돈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다. 아무리 어린이였지만 왜 그리 우둔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뽑기 재주가 있었는지, 행운이 따랐는지, 나의 손에 장난감 권총 세 개가 들렸다. 그때 비원은 화장실 입장료로 5원을 받았다. 나는 오줌을 바지에 지릴 지경에 이르러 동무 손바닥의 5원과 권총을 물물교환했다. 이후 사정은 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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