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

대빈창 2018. 7. 2. 05:54

 

 

책이름 :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

지은이 : 전희식

펴낸곳 : 한살림

 

글 쓰는 농부 전희식이 전북 완주로 귀농한 해가 1994년이었다. 책은 22년차 농부로 살아온 저자가 쓴 귀농귀촌 길잡이로 집 마련에서 문화생활까지 시골생활에서 얻은 예민한 통찰이 담겼다. 집과 땅 구하기, 먹고살기, 농사짓기, 농기구 쓰기 등. 저자는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를 거쳐 귀농정책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태주의 농법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지구 곳곳에 발품을 팔았다. 뉴질랜드 카오스 스프링 농장, 야마기시 공동체 농장, 필리핀 북부 바기오 전통농업, 인도 최남단 오로빌 공동체,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아난다마르 공동체 등.

전희식은 90년대 초 남한 노동운동의 최대정파인 인민노련이 합법공간에 모습을 드러낸 한국노동당의 부위원장이었다. 민중당 간판을 걸고 '92년 인천에서 국회의원 선거 후보로 나섰다. 80년대 중반 그 유명한 대우자동차 파업을 이끈 주역으로 인천 노동운동의 희망이었다. 열혈 노동운동가에서 생태주의 농사꾼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었다. 저자는 그동안 8권의 책을 내놓았다. 386세대에 대하여 좀 안다고 하는 이들은 노동운동가 전희식을 학출(학생 출신)로 오해 할지 모르겠다. 분명 저자는 노출(노동자 출신) 현장 활동가였다. 책장에 저자의 책이 세 권 꽂혀 있다. 2006년 전북 장수 덕유산 기슭으로 옮겨, 여든여덟의 치매 앓는 어머니를 모신 이야기 『똥꽃』(그물코, 2008)은 책씻이를 했다. 저자의 생태주의 농사철학이 담긴 귀농귀촌 길잡이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한살림, 2016)는 막 책장을 덮었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책은 사람·땅·작물 모두 돌보는 전통 농사살림을 다룬『옛 농사 이야기』(들녘. 2017)다.

1996년 여름, 저자가 처음 귀농했을 때 나름대로 농사에 자신이 있었다. 고교시절까지 쌔빠지게 농사일을 거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었다. 15여 년 동안 한국 농업은 천지개벽을 했다. 시골 농사일은 사람이 아닌 기계가 다했다. 저자가 새로 농사일을 배우는 힘겨운 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고교를 졸업하고, 두해동안 그 힘들다는 용궁패의 어엿한 일원이었다. 혀를 내두르는 노동 강도는 보통 깡다구로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오야지(기계 주인)는 탈곡기와 발동기의 임자를 말한다. 고정 멤버는 여섯 명이었다. 탈곡기에 매달려 볏단의 낟알을 떠는 인원 네 명, 탈곡기 뒤에서 먼지를 온통 뒤집어쓰며 지푸라기를 추스르는 한 명(용궁패에서 가장 연장자), 쏟아지는 알곡을 가마니에 담아내는 한 명 이었다. 볏단을 나르거나, 짚단을 나르고 낟가리를 쌓는 뒷일은 논 주인이 일손을 샀다. 늦가을, 새벽 5시. 뒷목을 보는 연장자가 대문의 초인종을 눌렀다. 달빛이 온 누리에 쏟아지던 꼭두새벽이었다. 눈을 부비고 세면도 못한 채 논주인 집에서 아침을 먹었다. 들녘 논에 탈곡기를 적재함에 실은 경운기로 이동했다. 가빠를 펴고 탈곡기를 앉혔다. 경운기와 피대를 연결했다. 한참 일을 하다 보면 바람의 방향이 바뀌게 마련이었다. 갯흙으로 콧구멍이 막혀 숨쉬기가 곤란해서야 탈곡기 방향을 틀었다. 그만큼 일이 더뎌졌다. 첫해 나는 쌍코피를 터뜨리며, 악으로 일을 쫓아다녔다. 일은 보통 밤 6시쯤에 마쳤다. 한 달을 쉬지 않고 일해야 마을앞 들녘이 훤했다. 우리 용궁패는 워낙 숙달된 탈곡패로 다른 마을 원정에 나섰다. 근 한 달 보름, 최악의 노동 강도를 견뎌야 진정한 용궁패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