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모독(冒瀆)

대빈창 2018. 7. 13. 07:00

 

 

책이름 : 모독(冒瀆)

지은이 : 박완서

펴낸곳 : 학고재

 

티베트 ; 라싸(수도) - 사미에 사원, 포탈라 궁, 조캉 사원(大昭寺), 노블링카(여름 궁전). 장채(제3의 도시) - 방코르 초르덴(白居寺), 장채 성(城). 시가채(제2의 도시) - 타쉬릉포 사원. 팅그리 - 히말라야 산맥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방(초모랑마 - 에베레스트). 장무(티베트 국경도시)

네팔 ; 카트만두(수도) - 다르바르 광장(목조 사원 가스타 만타드), 스와암브나드 사원(카트만두 최고 불교 사원), 보드나트 사원(세계 최고 불탑), 파슈파트나트 사원(힌두교 성지). 치트완 국립공원. 포카라(휴양지·트래킹 출발지) - 최고 히말라야 설산 조망지.

 

작가의 발길이 머물렀던 티베트·네팔의 도시와 유적지이다. 티베트 여행은 고산증으로 연일 코피를 흘리면서도 책에 실린 150여 컷의 사진을 맡은 시인 민병일과 소설가 이경자, 김영현과의 동행이었다. 네팔 체험은 「지구가 아름다운 까닭」(녹색평론 1996년 5-6월호)을 보완한 글이다. ‘내 생애에 밟아보는 가장 높은 지대’였다고 말하는 티베트·네팔 여행을 떠날 때 작가는 66세였다.

『모독(冒瀆)』은 학고재에서 출간된 아담하고 고급스런 하드커버 장정의 〈세계문화예술기행〉 시리즈 1권으로 1997년에 초판이 나왔다. 작가는 2011년 1월 작고했다. 2014년 가을 열림원에서 재출간되었다. 도서관과 책 수집가들 사이에서 희귀본으로 회자되던 책은 그동안 뽀얗게 먼지만 뒤집어썼다. 책을 고르는 안목이 있었다기보다, 그 시절 나는 〈학고재〉에 필이 꽂혔다. 20년 만에 다시 손에 펴들었다. 작가는 척박한 땅을 야크로 일구며 단순소박하게 살아가는 부처 같은 사람들과 집집마다 흰 벽 가득히 붙인 연료 야크 똥을 보며, 모든 쓰레기가 재순환되는 티베트에서 쓰레기 더미 지구의 이상향을 찾았다.

작가 일행은 설산 히말라야를 잘 볼 수 있는 팅그리를 향하다 랏채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작고 누추한 고장은 구걸하는 티베트인들 천지였다. 한족이 운영하는 길가 작은 식당에 들어가 요리를 시켰으나 느글느글한 기름기 음식을 속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행은 식당 부엌에서 직접 끊인 라면에 김치로 속을 달랬고, 주문한 요리에 손도 안댔다. 티베트 사람 보기를 버러지 보듯 하는 식당 한족 여주인은 라면 김치 국물에 남긴 중국 요리를 뒤섞어 개죽을 만들었다. 심통 사나운 그녀의 얼굴에 교만한 쾌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여자가 한 짓은 적선도 보시도 나눔도 아니었다. 같은 인간에게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건 순전히 인간에 대한 모독이었다.”(208쪽) 아귀다툼하는 티베트인들과 랏채 거리를 뒹구는 비닐, 스티로폼 쓰레기를 보며 작가는 생각했다. “우리의 관광 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으니.” 책에 생전의 작가 모습이 두 번 보였다. 겉표지 앞날개의 작가는 해발 5,200미터의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는 암드록초 호숫가를 거닐었다. 장채의 방코르 초르덴의 마당에서 순례를 마친 티베트 여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환하게 웃으며 차를 마셨다.

〈세계문화예술기행〉의 표지 제목은 조선시대 척사윤음(斥邪綸音)을 집자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답사여행의 길잡이』는 조선시대 목판본 언간독(諺簡牘)에서 집자했다. 『답사여행의 길잡이』의 문화유산 가는 길을 안내하는 말 탄 선비는 겸재 정선의 「백운동(白雲洞)」중 일부이고, 〈세계문화예술기행〉의 새 문양은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紋淨甁)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