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마지막 목격자들

대빈창 2018. 6. 20. 07:00

 

 

책이름 : 마지막 목격자들

지은이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옮긴이 : 연진희

펴낸곳 : 글항아리

 

불 탄 군복과 철사로 두 손이 묶이고 맨발인 포로. 오빠는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페치카 한 구석을 날마다 갉아먹고. 쥐들이 죽은 사람의 입술과 뺨을 쏠아먹고. 임신한 사촌언니가 교수형을 당하고. 젊의 여자 시신의 젓을 간난 아기가 빨고. 빨간 장난감을 주며 다섯 살 미만 아이들의 피로 부상자 수혈. 갈증을 못 견딘 여자아이가 오줌 양동이에 얼굴을 묻고. 총살형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이름과 성을 큰소리로 외쳐, 누군가 가족들에게 전해 주기를 바라고. 할머니가 알몸으로 침대에 끈으로 묶인 채 누워있고. 죽은 엄마의 머리칼과 막냇동생의 기저귀가 불에 타고. 철도 일하던 사람들이 죽어 전부 레일위에 눕혀지고 그 위로 기관차가 달려왔고. 어머니 품에서 아이를 낚아채서 불에 던지고 우물에 던지고. 노인과 아이가 탄 보트를 강 가운데서 뒤집어엎고. 곤봉으로 사람들의 머리통을 전부 깨부수고. 셰퍼드들이 어린아이의 너덜너덜하게 찢긴 살점을 물어뜯고. 구덩이 속에 밀어 무릎을 꿇고 산 채로 묻고.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미쳐 단추를 씹어 먹고. 풀기가 남은 낡은 벽지 한 조각이 아침 식사. 엄마품의 아기 손에 쥔 물병을 쏘고, 아기를 쏘고, 아기 엄마를 쏴 죽이고. 온통 새까맣게 타버린 여자가 누웠는데 손만 살아 하얗고. 하룻밤 사이에 여동생의 길게 늘어뜨린 머리가 하얗게 세고.

 일명 ‘목소리 소설’(작가는 ‘소설-코러스’라 명명)은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200 ~ 500명을 인터뷰했다. 1명을 5 ~ 7번씩 만났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5 ~ 10년이 걸렸다. 『마지막 목격자들』은 구소련 벨라루스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참극을 몸소 견뎌 낸 101명의 아이들(전쟁 당시 두 살 ~ 열네살)의 목소리를 담았다. 전쟁 시 아이였던 생존자들은 인터뷰 당시 42 ~ 58세였다. 작가는 〈전쟁고아클럽〉과 〈고아원 출신 모임〉을 오가며 전쟁의 폐허 속에 내던져진 아이들의 한 서린 울음과 피 맺힌 절규와 끔찍한 비명소리를 담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벨라루스는 서쪽 경계선의 작은 연방 국가였다. 독일 나치가 독소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소련을 침공했다. 나치가 벨라루스에 괴뢰정부를 세운 것은 1941년이었다. 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 4년간 벨라루스의 마을 628곳이 불탔다. 인구의 1/4가 사라졌다. 전쟁고아가 2만5000명에 달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소련정부는 벨라루스가 독일 점령지였다는 이유로 배신자 취급을 했다.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평생을 따라 다녔다. 어릴 적 잿빛 기억은 참혹했다.

 

“나에게 인간이란 낯설고 위험한 존재예요.”

“우리가 자라지 않았던 것은 다정한 말을 별로 듣지 못했기 때문이예요. 엄마 없이 자라잖아요.”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오랫동안 사람들을 피했어요. 평생 혼자 있기를 좋아했어요. 남 사람들이 부담스러웠고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을 힘들어했어요.”

“배고픈 사람에게 하루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당신은 상상할 수도 없을 거예요.”

“그 국경선의······ 그 지방의······ 우리는 마지막 목격자예요. 우리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어요. 우리는 말해야 해요······ 우리의 말이 마지막 증언이 될 거예요······ ”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색세계사  (0) 2018.06.25
기억이동장치  (0) 2018.06.22
사막에 묻힌 태양  (0) 2018.06.18
집이 떠나갔다  (0) 2018.06.11
어느 별의 지옥  (0) 2018.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