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장정일의 공부

대빈창 2018. 8. 6. 05:44

 

 

책이름 : 장정일의 공부

지은이 : 장정일

펴낸곳 : 알에이치코리아(RHK)

 

양심적 병역거부 / 송시열의 북벌론(北伐論) / 대학의 과학교양 부재 / 2차대전 프랑스 군대의 전략 실패 / 후흑학厚黑學 / 우리나라 근대 민족주의 담론 / 일본 근대문학 사소설 / 사회적 지체遲滯 / 혁명적 예술가 모차르트 / 미국 극우파 / 현대 민주주의의 부자 과두정 / 레드콤플렉스 / 친일과 전쟁협력 / 시오니즘 / 국가주의·우익 보수주의 / 조봉암·진보당 / 하이데거의 나치 협력 / 이승만·박정희 테러정치 / 바그너와 게르만 신화 / 노엄 촘스키의 사상 / 박정희·히틀러 정신분석 / 영국 엘리자베스1세 여왕 연애사 / 대중독재·자발적 동의와 협조

 

책을 구성하는 23개 주제를 거칠게나마 열거했다. 첫 장은 러시아 출신 한국 귀화인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과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를 택해 양심적 병영거부를 논했고, 마지막 장은 『대중독재』의 엮은이 임지현의 총론 「‘대중독재’의 지형도 그리기」를 통해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 ‘대중의 자발적 동의와 협조’의 추상성을 비판했다. 작가의 독후감은 무비판적 사유 체계에 대한 당당한 문제의식을 키워주는 진짜 독서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의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꼭지는 12번째 글 「부서진 손잡이를 움켜쥐고」였다. 소제목은 80년대 가수 이동원이 부른 노래 「불새」의 가사에서 따왔다.

 

부서진 손잡이를 움켜쥐고 / 왜 나는 문을 열려 하는가 / 그 속에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있기에 / 이토록 나를 끌어당기나 / 그 속에 그 속에 무엇이 있나

 

작가는 2001년 우연히 술자리에서 만난 민주노동당원들을 향해 무례한 소리를 내뱉었다. 탄핵정국 속에서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찍지 못했다. 현실사회주의 몰락이후 작가는 어리석게 제도 정당에 표를 던졌다. 투표 양식은 내면화된 레드 콤플렉스로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아닌 질서와 안정에 대한 중산층의 집착이었다. 이 땅의 정당사는 계통발생이거나 자기복제로 ‘부서진 손잡이’를 잡고 아무리 당겨봤자 그 밥에 그 나물이었다. 공화당 → 민정당 → 민자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 ?. 민주당 → 새정치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 → 열린우리당 → 대통합민주신당 → 더불어민주당 → ?. 이들은 이념적 차이보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당이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열고 싶은가? 그렇다면 성향이나 지역적 고려가 아닌, 이념이라는 단단한 손잡이를 잡아당겨야 하지 않겠는가?”(203 ~ 204쪽) 작가는 마음속 깊이 사과하고, 민주노동당을 반드시 고려하겠다고 다짐했다.

4번째 글 꼭지 「어느 역사가의 유작」에서 다룬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의 저자 마르크 블로흐는 1944년 3월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었다. 고문을 받은 뒤 6월 총살되기 전 책의 제사題詞로 쓸 문구를 고전에서 몇 개 발췌했다. 이 말이 가슴 속에 오래 여운을 남겼다.

 

“얘야, 전장이나 사형대 위에서 또는 감옥에서 끝나지 않는 삶은 아름다운 삶이 되기에는 언제나 무엇인가가 모자란단다.”(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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