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으로 날아오르다
지은이 : 조용미
펴낸곳 : 창비
시인은 1990년 『한길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 시절 한길역사 강좌의 연장으로 한길역사기행이 이루어졌다. 나는 그 답사모임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모임은 민족사의 현장에서 가슴으로 호흡하고 온몸으로 체험하는 역사인식 운동이었다. 나는 월간지에 연재되는 답사기를 읽으며 간접체험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문학잡지는 오래가지 못하고 폐간되었다. 짧은 생명의 월간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의 시집이 눈에 익었다. 이제야 묵은 시집을 잡았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은 2000년에 초판 1쇄를 찍었다. 4부에 나뉘어, 59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홍용희의 「비밀의 숲, 존재의 시간성」이다. 시집의 끝에 실린 「시인의 말」의 마지막 문장이다. '길 위에 있는 자, 길 위에 있고자 하는 자들, 영혼이 길 위에 있어야만 안심이 되는 자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시편들은 길 위에서 쓰인 시였다. 시인의 발길은 방방곡곡에 닿았다. 섬, 숲 ,강, 산, 계곡, 왕릉, 별서, 소읍, 절, 암자, 폐사지 등. 표제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으로 날아오르다』는 마지막 시 「魚飛山」에서 따왔다. 4·6연다.
날아다니는 물고기가 되어 세상을 헤매고 다녔다 / 비가 쏟아져내리면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정에서 푸덕이며 금과 옥의 소리를 낸다는 萬魚山과 그 골짜기에 있는 절을 찾아가고 있었다
(······)
탱화 속의 물고기와 어비산과 만어사가 내 어지러운 지도 위에 역삼각형으로 이어진다 / 등이 아파오고 남쪽 어디쯤이 폭우의 소식에 잠긴다 萬魚石 꿈틀거리고 눈물보다 뜨거운 빗방울은 화석이 된다
이 땅에서 물고기는 항상 눈을 뜨고 있어 재액을 방비해준다는 믿음 때문에 벽사(辟邪)의 상징이었다. 경기 가평과 양평 경계의 어비산(魚飛山, 826.7m)은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에 있어 장마철 폭우가 쏟아져 일대가 잠기면, 계곡에 갇혀있던 물고기들이 어비산을 넘어 한강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남 밀양의 만어산(萬魚山, 670m)을,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화하여 골짜기 속에 가득 찬 돌이 되었다”고 지명 유래를 밝혔다. 우리말로 돌너덜이라고 부르는 만어산의 암괴류(巖塊流, Block stream)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한국의 산지 사면에서 눈에 띄는 돌너덜 지형은 기반암을 뚫고 들어온 암석이 융기해 팽창하면서 압력에 의해 갈라지고 틈이 생겼다. 땅 속에서 오랜 시간 풍화를 받아 쪼개진 돌덩어리들이 만들어졌다. 얼었던 땅의 기온이 오르면 반죽처럼 물러지면서 경사진 아래도 미끄러져 내렸다. 물에 의해 흙이 씻겨 내려가고 돌덩이들이 드러났다. 빙하기가 지나자 돌덩이들은 그 자리에 화석처럼 고정되었다. 〈경향신문〉의 〔우리 산의 인문학〕(25) 「물고기산 수수께끼」에서 발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