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지은이 : 황인숙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인을 이렇게 만날 수 있구나. 황. 인. 숙. 평범한 이름의 그녀. 시인 함민복의 스승은 서울예대 오규원 시인이었다. 스승이 강화도 전등사 아름드리 소나무 둥치에 영면한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화도 시인 함민복은 스승 무덤의 능참지기(?)였다. 스승은 수많은 시인과 작가를 길러내 서울예대는 문단사관학교라 불리었다. 열거된 제자 시인에서 항상 앞자리의 이름은 황인숙이었다. 시집 앞날개의 이력을 살폈다. 58년생으로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신간을 검색하다, 뇌리 한 구석에 자리 잡았던 시인의 이름 석자가 불현듯 떠올랐다.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은 『리스본行 야간열차』(문학과지성, 2007)이후 10년 만에 선보인 시집이었다. 부 구분 없이 90시편이 실렸고, 해설은 문학평론가 조재룡의 「명랑과 우수, 그리고 삶, 오로지 삶」이었다. 문학평론가는 “가슴도 정신도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여기, 삶이 뿜어내는, 삶 속에서 숨 쉬고 있는 우수와 명랑의 타자들”이라고 평했다. 연작시는 「삶의 궤도」가 3편, 「숙자 이야기」가 2편이 실렸다. 나는 시인의 이름에서 연유한 제목이라고 어림짐작했다. 하지만 시에서 얘기하는 숙자는 路宿者였다.
「당신의 지하실」, 「고양이가 있는 풍경 사진」, 「중력의 햇살」, 「골목의 두 그림자」, 「그림자에 깃들어」, 「고통」이 눈에 뜨였다. 고양이에 관한 시다. 허술한 나의 시선을 빠져나간 고양이 시가 더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 시인은 ‘고양이 시인’으로 불렸다. 시인은 실제 5년전부터, 그리고 2년 전부터는 동네 길냥이들에게 하루 두 번씩 꼬박꼬박 먹이를 주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은 시인의 등단작인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의 전문이다.
이 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 태어나리라. /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 공처럼 둥굴릴 줄도 아는 /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 나는 툇마루에서 졸지 않으리라. / 사기그릇의 우유도 핥지 않으리라. / 가시덤불 속을 누벼누벼 / 너른 벌판으로 나가리라. / 거기서 들쥐와 뛰어놀리라. / 배가 고프면 살금 살금 / 참새떼를 덮치리라. / 그들은 놀라 후다닥 달아나겠지. / 아하하하 / 폴짝폴짝 뒤따르리라. / 꼬마 참새는 잡지 않으리라. / 할딱거리는 고놈을 앞발로 톡 건드려 / 놀래주기만 하리라. / 그리고 곧장 내달아 / 제일 큰 참새를 잡으리라.
이윽고 해는 기울어 / 바람은 스산해지겠지. / 들쥐도 참새도 가버리고 / 어두운 벌판에 홀로 남겠지. / 나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 어둠을 핥으며 낟가리를 찾으리라. / 그 속은 아늑하고 짚단 냄새 훈훈하겠지. / 훌쩍 뛰어올라 깊이 웅크리리라. / 내 잠자리는 달빛을 받아 / 은은히 빛나겠지. / 혹은 거센 바람과 함께 찬 비가 / 빈 벌판을 쏘다닐지도 모르지. / 그래도 난 털끝 하나 적시지 않을걸. / 나는 꿈을 꾸리라. / 놓친 참새를 좇아 / 밝은 들판을 내닫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