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내 가슴에 매화 한 그루 심어놓고
지은이 : 손종섭
찍은이 : 안형재
펴낸곳 : 학고재
책은 한마디로 매화 마니아 선조들의 시문(詩文) 모음집이었다. 선비들은 사군자(四君子)의 매난국죽(梅蘭菊竹)에서 매화를 으뜸으로 꼽았다. 매화는 지조와 품격의 상징이었다. 재야 한문학자 손종섭은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 매화를 주제로 한 선인들의 시문(詩文)을 엮고 옮겼다. 1부는 이황을 비롯한 105명의 시와 시조 140편이 정선되었다. 2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인 강희안의 『양안소록』에 실린 「매화」를 비롯하여 산문 7편을 모았다.
매화의 다양한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선인들의 시조와 한시, 산문들과 함께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한 것은 매화 옛그림과 사진이었다. 옛그림은 김홍도의 〈선상관매도(船上觀梅圖)〉를 비롯한 25점과 자수 1점이 실렸다. 사진은 경남 산청 단속사의 강희백이 심은 수령 550년의 백매 〔정당매(政堂梅)〕를 위시해 분매(盆梅) 및 정매(庭梅) 사진 32점이 눈길을 끌었다. 표지 그림은 조선후기 화가 북산(北山) 김수철(金秀哲, ? ~ ?)의 석매도(石梅圖) 부분이다.
매화 사랑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 이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 ~ 1570)이었다. 퇴계는 안동 도산서원 뜰에 매화를 심어놓고 꽃이 필 때면 달이 이울도록 매화나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병이 들어 깨끗하지 못한 모습을 매화에게 보일 수 없다며 매화분을 눈에 안 뜨이는 곳으로 옮기게 했다. 퇴계의 유언은 단 한마디였다. "매화분에 물 잘 주라.” 아래는 퇴계의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가운데 한 수다.
산창에 기대서니 밤기운이 차가워라. 獨倚山窓夜色寒
매화 핀 가지 위에 달 올라 둥그렇다. 梅梢月上正團團
봄바람 청해 뭣하리 不須更喚微風至
가득할손 청향일다 自由淸香滿唍間
나는 안쓰러운 몰골의 노매(老梅) 한 그루를 주일에 한 번은 볼 수밖에 없다. 이웃섬 볼음도의 배터에서 가장 먼 안골의 한 마을 집 마당에 터 잡은 매화는 고난의 세월을 시름시름 앓았다. 하지만 섬에서 가장 일찍 꽃을 피웠다. 아름드리 줄기에 힘겹게 내뻗은 가느다란 몇 가지에 매달린 투명한 붉은 꽃잎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어릴때부터 나무둥치에서 놀며 자란 아는이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나무가 문화재로 지정되면 마을 개발이 막힌다며 어느 사람이 몹쓸 짓을 했다고 한다. 돈벌레로 전락한 부동산 투기가 극성을 떨던 개발독재가 낳은 이 땅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만약 볼음도 홍매(紅梅)가 별 탈 없이 제 운명대로 살았다면, 지금은 볼음도의 천연기념물 제304호 은행나무와 멋들어진 정자를 거느린 이팝나무와 함께 3대 고목(古木)으로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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