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대빈창 2018. 12. 13. 06:30

 

 

책이름 :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지은이 : 박지원

옮긴이 : 김혈조

펴낸곳 : 학고재

 

앞서 잡았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글 백가지』의 리뷰는 이렇게 시작했다. 인천 부평 한겨레문고의 심벌마크가 파란색 잉크로, 1998. 9. 2 책을 손에 넣은 날짜가 붉은 잉크 스탬프로 책술에 찍혔다.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의 붉은 잉크 스탬프의 날짜는 1998. 2. 12 이었다. 20여 년 전 나는 인천 부평의 대형서적에서 책을 손에 넣은 모양이었다. 나를 연암 박지원(1737 - 1805)의 세계로 이끈 첫 책이었다. 그 후 돌베개에서 출간된 박희병의 『연암을 읽는다』와 김혈조의 『열하일기』를 내처 잡았다.

연암은 18세기 지성사의 한 획을 긋는 문체반정의 핵심 『열하일기』로 한국문학사에서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혔다. 『열하일기』는 세계 최고의 기행문이었다. 책은 김혈조 한문학자가 연암의 작품에서 엄선한 산문 95편이 6장에 나뉘어 실렸다. 책은 故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으로 일시 직무가 정지되었던 해인 2004년, 1주일간 관저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면서 챙긴 독서목록의 한 권이었다. 고인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의 가치체계로 민(民)의 세계에 주목한 연암을 통해 정국구상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박지원이 살았던 조선시대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과거였다. 연암은 입신양명의 코스를 이탈하여 이덕무, 홍대용, 이서구, 백동수 등과 뜻을 함께 했다. 책을 통해 나는 박지원이 자호(自號)를 연암(燕巖)으로 지은 이유를 알았다. 1771년(영조 47년) 연암은 백동수와 함께 황해 금천의 연암협(燕巖峽)을 답사하고, 은둔할 뜻을 품었다.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집의 왼편에 깎아지른 듯 한 푸른 절벽이 그림병풍을 둘러쳤다. 바위틈은 속이 벌어져 저절로 암혈을 이루었다. 제비들이 그 속에 둥지를 틀었으니 제비바위(燕巖)이었다.

표지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의 부분이다. 선비가 말을 멈추고 버드나무 위의 꾀꼬리를 바라보는 장면을 그린 조선 풍속화 중 가장 서정미가 뛰어난 작품이었다. 표제글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는 첫 꼭지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라」에 나오는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이 장님에게 한 말이다. 장님이 된 지 20년이 된 사람이 밖에 나왔다가 홀연히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런데 집을 찾아 갈 수 없어 길가에서 울고 있었다. 이에 선생이 집을 찾아가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나는 책을 읽어나가다 이 시대의 문학평론가 신형철을 떠올렸다. 요즘 시인이나 소설가는 책이 나오면 문학평론가의 글을 받으려 줄(?)을 섰다. 문학 독자들은 본문의 시나 소설보다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접하려 책을 집어 들었다는 그럴듯한 풍문이 나돌았다. 18세기 선비들은 책을 엮으면 발문으로 연암의 글을 실으려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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