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분지도 이야기 셋

대빈창 2018. 11. 22. 04:43

 

 

 

분지도(分芝島)는 면적 0.04㎢, 해안선 연장 1.4㎞, 해발 7m의 작은 무인도입니다. 서도(西島) 군도(群島)의 9개의 무인도 중 가장 친근한 섬으로, 아침저녁 산책길에 하루 두 번 만나는 섬입니다. 분지도는 대빈창 해변에서 서향으로 1.5㎞ 정도 떨어졌습니다. 섬 이름은 주문도에서 분리되어 나갔다는 의미로, 떼를 나누었다는 뜻이 됩니다. 하루 두 번 물이 밀면 분지도는 온전한 섬이지만 물이 썰면 갯벌이 드러나 주문도와 뭍으로 연결됩니다. 분지도 주변 갯벌은 상합 조개 천지입니다. 돈이 귀한 섬 주민의 화수분 창고입니다. 날이 차 상합조개가 갯벌 속 깊이 몸을 숨기는 추운 계절은 어쩔 수 없지만 갯벌이 드러나면 주민들은 어김없이 그레를 메고 섬 주변 갯벌을 뒤집니다.

어릴 적 이름으로 불리는 문갑이 형의 집은 대빈창 해변 고갯길 교회 앞집입니다. 일 년 열두 달 소주를 옆구리에 끼고 사는 지독한 애주가(?)입니다. 한 배미의 논과 두 마지기의 밭을 일궈 목에 풀칠은 하지만 가끔 물때가 맞으면 선외기로 바다에 나서는 어부 입니다. 젊은 시절 어느 날, 한 여름 조업에 나섰다가 갈증을 못 이겨 분지도에 배를 댔습니다. 전날 들이부은 알코올이 유발한 조갈로 주위 사람들은 이해합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샘을 분지도는 감추어두고 있었습니다. 목을 축일 작정으로 샘에 다가서던 문갑이 형은 기겁하여 선외기를 몰아 무인도를 빠져 나왔습니다. 통나무만한 구렁이가 샘에 몸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일간 지방지의 흑백 사진에 녀석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환경단체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멸종위기에 몰린 희귀식물 보호 차원에서 녀석의 생포를 당부했습니다. 인천해양연구단체들이 합동으로 늦가을 무인도 식생조사에 나섰습니다. 분지도를 지나며 우연히 잡은 사진에 녀석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잎이 떨어진 수목사이 바위에 모습을 드러낸 흑염소였습니다. 앞뒤 사정을 알아보니 15년 전 주문도 주민이 무인도에 흑염소를 방목했습니다. 사정이 어려워지자 모든 흑염소를 주문도로 잡아 들였습니다. 도대체 녀석은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요?

올 여름은 기상청 관측 이래 사상 최악의 폭염이 악명을 떨쳤습니다. 도시인들이 더위를 피해 섬을 찾았습니다. 민박집에 머물던 한 일행이 밤중에 뒷장술 해변 조개잡이에 나섰습니다. 몸이 불편한 분이 힘들어하자 먼저 집에 들여보냈습니다. 일행은 조개잡이를 마치고 새벽에 민박집에 돌아왔습니다.  먼저 갯벌을 벗어나 집으로 향한 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섬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다행히 물때는 조금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아침 해가 봉구산을 넘어올 때까지 분지도 주변 너른 갯벌을 뒤졌습니다.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갯골에 사람 발자국과 상합을 잡는 그레를 끈 자국을 찾았지만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습니다. 바닷일에 도가 튼 토박이가 말했습니다. “조금 물살에는 물에 빠진 시체가 그 자리에 있다”고. 물이 밀기 시작합니다. 아침 객선으로 해양경찰과 119소방대가 섬에 들어왔습니다. 실종자는 어이없게 분지도에 있었습니다. 그는 왜 새벽녘 마을주민들이 큰 소리로 분지도 주변을 뒤졌을 때 가만히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진맥진해 잠이 들었던 것이었을까요. 주민들은 이렇게 추측했습니다. 자정 무렵, 방향감각을 상실한 외지인이 볼음도 불빛을 향해 걷다가 갯골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자 분지도로 스며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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