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느리가 신통하다.

대빈창 2018. 12. 3. 07:00

 

 ‘느리’는 산부리가 길게 뻗어나가 늘어진 곶(串)이 있는 주문도의 자연부락 이름이면서 새 식구가 된 지 달포가 지난 우리집 진돗개 새끼 이름입니다. 어머니는 동네 이름을 자꾸 까먹으십니다. 하루에 몇 번씩 강아지를 부르시면 자연스럽게 기억에 오래 남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느리는 작은 형 손에 끌려 낯설고 물 선 서해의 외딴 섬까지 네 시간의 고된 여행을 마쳤습니다. 어머니 방에 군불을 때는 아궁이를 들인 봉당이 느리의 보금자리였습니다. 보일러실과 붙어있어 찬 계절을 이겨내기에 강아지한테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엄마 품을 떠나 상자에 갇혀 먼 길을 온 느리가 연신 끙끙거리며 작은 몸을 떨었습니다.

어머니는 느리가 안쓰러운지 방에서 함께 지내셨습니다. 방바닥에 깔린 두툼한 헌옷이 녀석의 잠자리가 되었습니다. 느리는 똥오줌을 가릴만큼 영리했습니다. 낯이 선 느리는 며칠 동안 꿈쩍않고 자리만 지켰습니다. 뒤가 마려우면 끙끙거려 어머니에게 신호를 보냈습니다. 초저녁 잠이 많으신 어머니를 따라 잠이 들었다가 새벽녘 아침밥을 지으시는 어머니와 함께 일어났습니다. 낯이 익자 느리는 하루 종일 어머니를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어머니가 이웃집 일손을 도우러 가시면 얌전히 헌옷 위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하시면 곁에 붙어 어리광을 부렸습니다. 이쁜 짓만 골라하는 느리에게 어머니는 정을 듬뿍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느리의 실내생활을 눈감았습니다.

 

“할머니, 이러면 개 버릇이 나빠져서 나중에 더 힘들어요”

 

뒷집과 감나무집 형수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느리는 안방 생활 보름 만에 새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세 칸 창고에서 가장 작은 칸에 느리의 집을 마련했습니다. 개장에 느리가 깔고 앉았던 겨울 헌옷을 깔아주었습니다. 떨어져 나간 문짝을 한쪽으로 밀치고, 찬바람과 눈비를 가릴 비닐 가림막을 쳤습니다. 느리는 장난이 아주 심했습니다. 목줄이 닿는 지점까지 마늘밭의 부직포를 잘게 찢어놓았습니다. 짚이 깔린 마늘밭 귀퉁이는 녀석의 뒷간이 되었습니다.

 

“애야, 강아지가 신통하구나.”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녀석은 신통하게 들락거리면서 거추장스러운 비닐을 가만 놔두었습니다. 사람이 손으로 천막을 들어 출입하듯이 녀석은 자연스럽게 머리로 비닐을 들썩이며 드나들었습니다. 기특한 녀석은 사료가 담긴 재떨이와 물그릇도 제자리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어머니 방에서 생활했던 기억이 살아나는지 개집의 헌옷을 끌어내 마늘밭에 넓게 펴고 그 위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녀석은 자라는 게 눈에 뜨일 정도로 먹성이 좋습니다. 고라니의 텃밭 도둑질에 올해 서리태 수확은 물 건너 갔습니다. 고라니는 밤마다 산에서 내려와 콩잎과 콩깍지를 깨끗이 훑어 먹었습니다. 겁이 많은 녀석이지만 개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내년 텃밭농사는 고라니 피해부터 느리가 지켜 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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