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대빈창 2018. 12. 21. 06:40

 

 

책이름 :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지은이 : 리산

펴낸곳 : 문학동네

 

체사레 파베세 / 도어즈 / 넥스트 / 너바나 / 장고 라인하르트 / 밥 딜런 / 존 바에즈 / 에곤 실레 / 에디트 피아프 / 장 콕토 / 두보 / 로트렉 / 커트 코베인 / 심수봉 / 레이먼드 카버 / 게리 무어 / 체 게바라 / 제니스 조플린 / 이븐 바투타 / 반 고흐 / 엥겔스 / 밥 말리 / 리산

 

부 구분 없이 실린 55 시편을 읽어나가다 내 눈길에 잡힌 인명(人名)이다. 해설은 성기완의 「시는 혁명에 어떻게 관여하나」였다. 성기완은 시인·문학평론가지만 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전 멤버로 리더면서 기타리스트였다. 내가 성기완을 처음 접한 것은 제34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시집인 황유원의 『세상의 모든 최대화』에 실린 작품 해설이었다. 문학평론가가 글 부조를 한 시집들의 공통점은 팝 아티스트와 록 밴드가 뻔질나게(?) 출몰한다는데 있다.

시집의 헌사는 ‘센티멘털 노동자 만세’이다. 시인은 ­센티멘털 노동자 동맹­ 동인이었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의 박정대와 시인 강정과 함께. 급진적 감성 노동자. 시인 박정대는 강정, 리산 시인과 〔인터내셔널 포에트리 급진 오랑캐 밴드〕를 결성했다고 말한바 있다. 강정의 첫 시집 『처형극장』을 가트에 던졌다. 나의 세대는 통과의례로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록의 세례를 받았다.

 

언덕을 넘어 외곽으로 가는 마지막 전차의 종소리도 그친 자정이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입술을 가진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손톱을 가진 여자가 모여드는 자정 너머 술집에 불이 켜지지

(······)

멀리 가는 밤새들 울음 우는 긴 모퉁이 지나 자정 너머 술집에는, 낡은 앨범 속 램프에 그을린 가수의 목소리 흥얼흥얼 타오르는 자정 너머의 화덕, 오래도록 식지 않을 한 스푼의 온기가 있지

 

「너바나」(28쪽)의 첫 연과 마지막 연이다. 시집을 잡고,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가지 3인조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밴드 너바나(Nirvana)의 대표곡 「Smells Like Teen Spirit」를 수십번 들으며 흥얼거렸다. 산스크리트어 Nirvana는 일체의 번뇌를 해탈한 최고의 높은 경지인 열반(涅槃)을 뜻한다. 너바나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활동한, 역대 가장 많은 앨범을 판 밴드의 하나였다. 너바나의 활동은 1994년 스물일곱살의 밴드 리더겸 기타리스트인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권총 자살로 막을 내렸다. 여덟살 때 이혼한 부모의 영향은 어린 커트 코베인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극심한 빈곤에 시달린 유년 시절과 외로움과 고통을 잊으려 마약과 섹스에 탐닉하던 코베인은 록 그룹 너바나에서 천재적 음악적 열정을 분출했다. 방황과 혼돈의 세대를 대표하는 커트 코베인의 유언은 “더 이상 열정이 없어서, 서서히 꺼지는 게 싫어서” 목숨을 버렸다.

시인은 2006년 『시안』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7년 만에 첫 시집을 상재했다. ‘급진적 감성 노동자’ 동인 시인의 첫 시집을 읽으며 요절한 천재 록 가수의 녹물이 튀어나올 것 같은 보컬에 흠뻑 빠져들었다. 나의 젊은 시절 한때로 되돌아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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