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봄날 불지르다

대빈창 2019. 1. 31. 07:00

 

 

책이름 : 봄날 불지르다

지은이 : 유영금

펴낸곳 : 문학세계사

 

내가 시인을 처음 만난 책은 23인의 시인들이 오지의 비경을 찾아 쓴 글을 모은 『시인의 오지기행 - 고요로 들다』(문학세계사, 2012)였다. 시인의 글은 「석이암산자락 너와집」으로 강원 정선 임계의 오지를 찾아가는 과정과 인연을 그렸다. 시인의 유일한 시집은 2007년에 나왔다. 나는 시인의 기행에세이 한 편을 뒤늦게 잡았고, 출간된 지 10여 년이 지난 시집을 손에 넣었다. 시집은 각 부에 15편씩 4부에 나뉘어 모두 60편이 실렸다. 해설은 장석주(시인·문학평론가)의 「질린 그녀는, - 유영금의 시세계」이다. 문학평론가는 “이 불행, 이 절망, 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는 시인”(98쪽)이라고 말했다. 시인의 말 「실비아 플라스, 프리다 칼로의 자유」는 시인의 굴곡진 삶의 고백이었다.

시인 유영금은 인가 몇 채 없는 광산촌인 강원 태백 동점동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마흔일곱에 본 늦둥이로 9남매의 막내였다. 다 큰 언니와 오빠는 모두 외지로 나갔고, 다섯 살 터울 언니가 어린 시인을 키웠다. 쉰이 넘은 늦바람난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는 도시를 헤매고 다녔다. 시인의 중학생 때 중풍맞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부아가 나서 집을 나갔다. 막내 언니도 취직을 해 서울로 떠났다. 어린 시인이 아버지의 병수발을 도맡았다. 아버지는 3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태백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가정적인 남자를 만난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15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교통사고가 났다. 남편이 운전하던 차의 조수석에 앉았던 시인은 대수술을 받고 2년 동안 누워 지냈다. 작은 상처뿐인 남편은 아내가 수술을 기다리며 누워있는 동안 바람이 났다. 술집에서 눈 맞은 여자와 떠나버렸다. 마취가 풀리는 회복실에서 시인은 남편에 대한 증오로 치를 떨었다. 감수성 예민하고 내성적이던 사춘기 외아들은 완전히 변했고 세상에 대해 복수를 시작했다. 전신이 부서질 것만 같은 교통사고 후유증에서 시인을 구해 준 유일한 존재가 시였다. 시인은 울음과 분노를 한자 한자 적어 내려갔다. 평론가는 말했다. “시인은 저를 치욕에 빠뜨린 삶의 불행과 절망에서 시의 동력을 수혈해 왔다.”(106쪽)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면서 표제시인 「봄날 불지르다」(13쪽)의 전문이다.

 

머리칼에 / 신나를 바르고 / 성냥을 그어댄다 / 지글지글 타는 두개골 / 냄새의 찌꺼기가 / 봄날을 쾅 닫는다 // 누가 / 나를 맛있게 먹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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